[생각의 숲] 천사와 진상녀

입력 : 202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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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최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음식’과 관련한 두 젊은 여성에 관한 기사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우선 첫번째 기사다. 한 여학생은 어느 누리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담을 전하면서 알려졌다.

남편과 사별 후 두 아들을 혼자 키우며 빚까지 갚느라 힘들었다는 누리꾼은 “작은아들이 편의점에서 밥과 참치캔을 여러개 샀는데 돈이 부족했다. 이를 본 한 여학생이 즉석카레 등 식료품을 더 가지고 와서 대신 결제해줬다”며 그 고마운 여학생을 찾는다는 글을 온라인 공간에 올렸다. 게다가 그 여학생은 작은아들에게 “토요일 오후 1시에 이곳에 오면 또 먹을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단다. 온라인 공간의 다른 누리꾼들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살 만한 것은 이런 여학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찬사하면서 그 여학생에게 ‘편의점 천사’라는 별칭을 선물했다.

그다음 두번째 기사. 한 20대 여성은 KTX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기고 음식물을 먹다가 자신에게 항의하는 다른 승객에게 되레 거친 말을 쏟아내며 행패를 부렸다. 이런 모습이 찍힌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되며 그 여성은 유명세(?)를 탔다. 그 여성은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큰 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것도 모자라 햄버거를 먹는 것을 경고하는 승무원의 말도 무시했단다.

이런 행동을 지적하는 40대 승객에겐 “내가 여기서 뭘 먹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천하게 생긴 X이. 너 우리 아빠가 누구인 줄 알고 그러느냐. 너 같은 거 가만 안 둔다”라고 협박했다. 정말로 그 여성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내가 빵 좀 먹었다고 어떤 미친X이 나한테 뭐라고 그래. 내 사진을 찍어 SNS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어”라고 말했다. 이같은 사건이 전해지자 누리꾼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이 여성을 ‘KTX 햄버거 진상녀’로 명명했다.

음식과 관련해 극과 극의 행동을 보인 두 여성에 대한 댓글에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리꾼들은 사건 당사자인 여성들보다 그들의 ‘부모’를 더 궁금해했다는 점이다.

‘편의점 천사’에 대한 게시물에는 ‘따님을 이렇게 잘 키운 부모님도 칭찬받아야 할 듯’ ‘부모님이 딸 교육 정말 잘 시키셨다’ 등 부모를 향한 덕담이 이어졌다. 반면 ‘KTX 햄버거 진상녀’에게는 ‘네 아빠가 누군지 진짜 알고 싶다’ ‘꼭 문제아들이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느냐란 말을 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진상 딸에 진상 애비겠지’ 등의 댓글 폭탄이 쏟아졌다.

댓글들을 읽으면서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자녀의 가치관, 말과 태도는 부모로부터 학습된다는 뜻이다. 부모는 유전자만이 아니라 언행까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자녀 앞에서 내 언행에 대해 돌아봐야 할 때다. 남들을 짓밟고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진상’으로 자랄 확률이 크다.

모든 아이가 천사로 자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사회 규칙, 상식, 배려심 등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내 자식의 미래 모습이 궁금하면 내가 자주 쓰는 말을 녹음했다가 들어보면 될 일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친절이 바로 종교’라고 했다. 부모가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이 바로 참교육일 수도 있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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