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마르지 않는 사랑 샘

입력 : 202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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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와 맞닿은 경남 밀양의 북쪽 끝자락. 가파른 산 경사지를 타고 내려와 옴팍하게 들어간 곳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어느 집은 감나무가 돌담 너머까지 자라 건너편 집 감나무와 어깨동무하듯 사이가 좋다. 볕 좋은 처마 밑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이 위아래 좌우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 마치 끊어진 염주 알처럼 보인다. 산골마을은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만 가끔 날 뿐,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조용하다.

이장님 댁은 골목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서야 나왔다. 위채와 아래채로 나뉜 전형적인 옛날 집이었다. 콘크리트 마당 한가운데서 이장님 내외와 노모가 밭에서 막 캐 온 도라지를 손질하고 있다. “어머님! 이제 도라지밭 저거 다 캐내고 내년에는 두릅나무 심을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래, 너그 하자는 대로 할게. 이제 도라지밭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서 안되겠다.” “우리가 두릅도 다 딸 거니까 어머니는 인제 그만 하이소. 그러다가 굴러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이장님 내외가 번갈아가며 여든일곱 노모에게 신신당부한다.

할머니 나이 쉰넷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 그때 남편 나이가 쉰일곱. 그때부터 할머니는 홀몸으로 이 골짜기에서 아들 넷을 키워내셨다. 그러다 좀 살 만할 때쯤, 아들 셋을 먼저 앞세우고 이제는 올해 예순일곱 된 이장님만 남았다. 집에서도 보이는 앞산에 남편을 묻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툇마루에 앉아 쳐다본다는 할머니. “영감이 저기 앞산에 있는데 보고 싶어도 내가 안 가고 자기가 못 오니 수천리라.” 그러면서 할머니는 영감님을 향한 그리움을 노랫가락에 살포시 얹어 띄운다. “바람이 불어와도 생각이 나고 구름이 쉬어가도 생각이 난다…. 보고 싶어도 안 오는 걸 우짜노.”

그때 다시 이장님이 산통을 깬다. “어무이, 평생을 자식들 위해 농사일만 했는데 이제 진짜 그만하셔야 합니다. 늘 해오던 일이라 손 놓기가 힘드시겠지만 남새밭에서 채소나 쉬엄쉬엄 키우시고 밭에는 절대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며늘아기야, 도라지 이거 다듬어서 너그 다 가져가라.” “어머니 반찬 할 것 남겨두고 가져갈게요.” 도라지에 묻은 흙만 털어내도 될 것을 일일이 깨끗하게 손질해서 담는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노모가 사는 곳으로 온 이장님은 이따금 부산을 들락거리고, 이장님 아내는 아직 부산에 산다. 그날은 이장님 내외가 같이 부산에 가는 날. 이장님 내외가 노모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인자 언제 올래?” “한 열흘 있다가 올게요, 어머님.” 잠깐의 이별이지만 늘 자식의 뒷모습은 아쉬운 법. 할머니는 멀어지는 이장님 내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이렇게 보내면 늘 허전하시죠?” “그럼. 갈 때는 허전해도 오면 반갑고. 부모 마음은 다 그래. 이제 죽을 나이도 코밑에 닿았고, 걱정은 하나도 없어. 다만 단 하나 자식이 안 아프고 오래 살았으면 하는 그 걱정밖에는. 자식이 하나 남았으니 걱정도 하나야. 남은 아들하고 며느리는 건강하게 아흔까지는 살아야지 싶어.”

이장님 내외가 집 밖을 나선 지 한참이 지났지만 할머니 고개는 자꾸만 대문 쪽으로 향한다. 자식이 젊든 나이가 들든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 어머니 인생엔 당신은 없고 자식만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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