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돌 사랑

입력 : 2021-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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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서면. 수채화 그림을 옮겨놓은 듯한 바다가 호수처럼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찾았다. 집집마다 쌓아올린 돌담이 정겨운 마을이다.

마을엔 여느 집과 다르게 유별스러울 정도로 돌담 주변에 돌이 많이 쌓여 있는 집이 있다. 마침 그 앞을 지나는데 돌담 밖으로 할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퉁겨져 나온다. “아이고 내가 이 돌 때문에 정말 못 살겠다. 돌이 그래 좋으면 돌하고 살던지!” “어휴, 자네는 돌의 세계를 아직 몰라서 그렇지. 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밋밋한 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르신 두분이 싸우고 계신다. 조심스럽게 험악한 분위기 한복판에 끼어들었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다투는 이유를 물으니 곧장 할머니께서 왼쪽 바지를 걷어 올리며 정강이에 난 상처를 보여준다. “우리가 부산 살 적에 거실 반이 수석이었는데 하루도 안 빠지고 돌에 낀 먼지를 닦았어. 한번은 돌 닦다가 돌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어. 수술까지 했어. 그 사달이 날 정도로 했으면 영감도 이제 좀 그만해야 할 것 아니요. 그런데 남해로 이사를 오고도 계속 돌을 주워오니까 내가 영감하고 사는 게 아니고 돌하고 사는 것 같다니까!”

할아버지는 어느새 담장 쪽으로 가 아무 말도 안 들리는 듯 바다를 쳐다보고 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의 뒤통수에다 대고 푸념을 털어놓는다. “이 다리 수술할 때도 내가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요? 저 영감은 병원에 한번도 와보질 않았어. 다친 날도 영감이 없어서 친구들이 병원에 데리고 갔다니까. 영감 머릿속에는 마누라는 없고 오로지 이 돌밖에 없어.” 그러면서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돌을 발로 걷어차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잠깐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그 짧은 틈새로 할머니 목소리가 불쑥 끼어든다. “저녁 반찬 하게 시금치나 좀 캐오소!”

할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어깨끈이 달린 플라스틱 바구니를 메고 집 밖으로 나간다. 밭에서 시금치를 캐던 할아버지 눈길이 한곳에 오래 머문다. 괴석을 발견한 것이다. 환희에 찬 할아버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불안한 것은 내 쪽이었다.

불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돌을 집어들고 위아래며 뒤쪽까지 쓱 훑어보더니 바구니에 담긴 시금치 사이로 돌을 숨긴다. 늘 그렇게 해 온 것처럼 노련하게 돌을 입수한 할아버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담장 위에 그 돌을 올려놓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할머니께 들키면 어쩌시려고 하느냐”고 여쭸더니 할아버지는 “돌이 한두개인가, 이렇게 올려놓으면 몰라”라며 아이처럼 웃는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성화가 돌담 밖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또다시 돌을 가져온 할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해 물었다. “할머니가 싫어하는 돌을 왜 계속 수집하세요?” 할아버지는 담장 위 돌 하나를 집어들고는 답한다. “요놈은 삼십년이 됐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모양도 무늬도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나는 얼굴에 주름도 생겼고 많이 늙었잖아. 어디 몸뿐인가. 마음도 많이 삭았지. 이 돌처럼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변하지 않았으면 해서 모으는 거지. 딴 이유는 없어. 이 돌만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새삼 돌담 위에 쌓인 밋밋한 돌들이 다르게 보인다. 돌 틈 사이사이로 할아버지의 마음이 보이는 듯도 하다.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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