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세한도’를 볼 절호의 기회

입력 : 2021-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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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편히 만나지 못하고 집 밖으로도 못 나가는 시간이 이어진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하소연도 많이 들린다. 누군들 정상으로 살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후군쯤으로 이름 붙여도 좋을 집단 우울증은 끝을 몰라 더 문제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립을 이어갈 수도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허용된 범위 안이라면 조심스럽게 숨통을 틔울 즐거움 하나는 괜찮지 않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겨울 지나 봄 오듯’ 특별전을 이달말까지 진행 중이다. 국보 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볼 수 있는 자리다. 설 전후의 가장 추운 시기를 뜻하는 ‘세한’은 바로 지금이다.

세한도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노송은 추사고, 잣나무 세그루는 의리가 변치 않는 세친구들을 뜻한다. 귀양살이로 모두가 등 돌렸을 때 변함없이 자신을 돌봐준 친구들을 위해 그린 기품 넘치는 답례가 바로 세한도다.

왜 세한도를 봐야 할까? 세한도는 우리 문화의 자랑거리로 손색없다.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 조선시대 문인화의 최고 걸작을 학교 다닐 적 미술시간에 배웠고, TV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자주 봤다. 그래서 세한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세한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더구나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서양미술사 속 명화를 보려고 프랑스 파리의 미술관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우리 그림에 쏟는 애정과 노력은 이에 못 미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때 자존감도 높아진다. 세한도야말로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갖게 할 명화 중의 명화다.

세한도의 여백은 고졸함을 풍긴다. 간결한 필치의 선만으로 추위가 느껴진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의 고독과 절망감이 전이되는 듯하다. 그림의 색깔과 명암은 물기를 꼭 짜낸 붓에 먹을 묻힌 갈필로 거칠게 드러난다. 그림이 글씨 같고 글씨가 그림 같아 조화롭다. 평생 갈고닦은 추사체로 그림을 그린 거다. 붓을 쥔 손의 힘과 속도만을 조절해 단번에 그린 그림이다. 다소 밋밋하게 여겨지는 우리 그림에 디테일이 더해지니 힘과 운동감이 느껴진다. 면이 입체로 여겨질 정도다.

게다가 그림의 크기는 15m를 넘는다. 우리나라와 중국 문인들이 붙인 찬문이 포함된 대작이다. 이렇듯 실제 마주한 세한도는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세한도는 개인 소장품이어서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사업가인 손창근이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했다.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 모두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 결단이 숭고하고 멋지다.

세한도의 우여곡절을 알면 기증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1844년 추사가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준 그림은 중국으로 건너가 문인들의 환대를 받게 된다. 일제강점기엔 추사 연구자인 일본인 후지쓰카의 소장품이 됐다. 자칫 환수 불가능한 문화재로 남을 뻔했던 그림은 서예가 손재형의 노력으로 1944년 국내로 들어온다. 이후 1970년대 개성 출신의 사업가 손세기의 손에 들어가 50년 가까이 소장됐다. 기증자 손창근은 그의 장남이다.

177년 동안 세나라를 거친 세한도는 이렇듯 출발부터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사전 예약을 거쳐 엄격하게 통제된 인원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거두어도 좋을 것 같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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