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고독 깊은 곳

입력 : 2021-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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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불관(大變不觀). 거대한 변화는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인류는 변화의 파도를 넘고 있다. 바이러스를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일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크고 작은 변화는 우리 삶을 장악했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은 서서히 확신이 돼가고 있다. 모든 인류가 겪는 재앙이라고 치부하거나 그래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견딜 만하다는 말로 위안 삼기에는 변화의 강도가 너무 크다. 그중에 우리가 미처 못 보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중국의 공상과학(SF) 작가 하오징팡의 소설집 <고독 깊은 곳>은 인류의 미래, 우리가 마주할 비참한 현실을 예견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중편소설 <접는 도시>는 SF 장르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과거에는 SF 소설이 말 그대로 공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공상이라는 단어를 지워도 될 만큼 미래를 그럴듯하게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리학을 전공한 작가의 상상력이 펼쳐낸 <접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접는 도시>의 설정은 ‘다중 우주’다. 중국 베이징의 중심부는 세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사람들은 48시간을 나누어 쓴다. 1공간에 사는 500만명이 24시간의 하루를 쓰고 캡슐에서 잠들면, 2500만명이 사는 2공간이 아침 6시부터 밤 10까지 다음 16시간을 살아간다. 그들도 잠들면 5000만명이 사는 3공간이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나머지 8시간을 사용한다. 시공간의 분할은 계층간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주로 청소 노동을 하는 3공간 주민들은 이틀 중에 8시간만 활동하고 나머지 40시간은 강제로 수면한다. 즉 존재가 정지되는 시간에 들어가야 한다. 공간 이동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 대해 잘 모른다. ‘접는 도시’가 시행된 이듬해에 태어난 주인공 라오다오는 다른 공간에는 가본 적이 없다. 대학 입시에 도전하며 계층 이동을 꿈꿨지만 결국은 청소 노동자가 됐다.

이 소설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삶 속에서 비슷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공간이 바뀌지도, 오랜 시간 강제 수면에 들지도 않지만 분명히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계층은 더욱 분명해졌다. 생계가 힘들어 삭발을 불사하는 사람이 있고, 주식시장 활황으로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다. 전셋집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전세비에 버금가는 종합부동산세를 내면서도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최강 한파’ 속에서도 새벽에는 재활용품을 모아야 하는 어르신들의 주름은 날로 깊어간다.

소준철 작가는 재활용품을 줍는 여성의 인생 여정과 하루의 삶을 그린 <가난의 문법>에서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계층의 차이는 있었다. 문제는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통의 우리는, 열심히 사느라 눈앞의 것만 좇아가는 우리는, 바이러스가 두려워 몸을 잔뜩 웅크린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못 느끼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잠이라도 충분히 잘 수 있는 <접는 도시> 속의 라오다오가 부럽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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