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천만원짜리 고구마

입력 : 2021-01-01 00:00 수정 : 2021-01-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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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덕곡면.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산자락에 집 몇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바깥에는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축사 한동이 있다.

그곳을 찾았을 때 마침 지팡이를 짚고 축사로 들어가는 할머니 한분이 보였다. 소에게 사료를 주던 할머니가 마치 소와 대화하듯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축사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어미소 한마리는 할머니 말씀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듯 할머니의 움직임을 따라 큰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할머니 혼자서 돌보기 어려울 만한 큰 소가 열댓마리는 돼 보였다. “영감 살았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았어. 저쪽 대밭 아래 있는 파란 지붕 집, 저기서 키웠던 소는 영감 죽은 후 다 팔아버렸어. 이제 요것만 나 혼자서 쉬엄쉬엄 키워.” “그래도 혼자서 키우기는 힘드시겠어요.” “안 그래. 얼마나 재미가 있는데. 수송아지 한마리 뽑으면 돈이 얼마라고. 그래서 자식들이 그만하라고 해도 그만 못 둬.”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그만두시는 게 낫겠어요.”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할머니는 소죽통에 물을 주고서는 지팡이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고구마 박스 쪽으로 다가가더니 짚고 있던 지팡이로 고구마 박스를 툭툭 내려쳤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것을 보니 다리가 불편하신가 봐요.” “아이고, 말도 마. 내가 그때 큰아들 말을 듣는 건데….”

그러고선 고구마 박스를 열어젖혀 고구마 하나를 집어든다. “이 고구마가 억수로 비싼 거요. 요거 하나가 얼마나 비싼지 계산이 안 나와. 올여름에 내려온 자식들이 몸도 안 좋으니 농사짓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 알았다 해놓고 자식들이 대구로 올라가는 거 보고 그 길로 고구마를 심으러 가다가 수로에서 쭉 미끄러졌는데 한참을 내려가는 거라. 이 길로 그냥 죽는구나 생각했지. 119가 오고 동네가 난리가 났어. 병원에서는 요 허리에 쇠를 박아놨어. 병원 수술비가 1000만원이 나왔지. 아이고, 그러니 내가 이 고구마를 쳐다보기도 싫어서 안 캐고 있다가 다른 집들 다 캐고 나서야 맨 나중에 캤어. 1000만원으로 고구마를 샀으면 합천군민이 다 먹고도 남았을 거야.”

할머니는 그러면서 고구마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이게 늦게 캐서 그런지 굵어. 억수로 비싼 거라 이것밖에는 못 주지만, 가져가서 삶아 먹어 봐. 맛있어”라시면서. “이 비싼 걸 어떻게 제가 가져가겠습니까”라고 맞장구를 쳤더니 괜찮다며 할머니는 고구마 두개를 더 넣어주셨다.

할머니는 큰아들한테 혼쭐이 났다는 말까지 보태면서 한참이나 후회를 하셨다. 자신의 몸을 다쳐서 불편한 것보다 그토록 큰돈이 나간 것이 안타까우신 듯했다. 할머니는 그 뒤에도 고구마 박스를 몇번이고 뚫어져라 보셨다.

“그때 큰아드님께 많이 혼나셨나 봐요?” “말도 마소, 말도 말아. 아들 말이 다 옳은 말인데도 그때는 어찌나 섧고 눈물이 나던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것과 자식이 뭐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셨다.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왈. “영감이 뭐라고 하면 내가 대들고 따지기라도 하는데, 자식이 뭐라고 하니까 그저 섧더라고.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그렇게 섧게 들리대. 나이 들면 자식보다 영감이 최고라는 걸 이 1000만원짜리 고구마농사를 짓고서야 알았어.” 할머니는 할아버지 잔소리가 그리워 그렇게 한참이나 고구마 박스를 쳐다보셨나 보다.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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