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거다

입력 : 2020-12-18 00:00

01010101401.20201218.900009647.05.jpg

밴드 ‘이날치’의 가락에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춤추는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이 화제다. 유튜브에 뜬 이날치 관련 콘텐츠를 전세계에서 3억회 넘게 조회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말로 된 판소리 가사를 알아들을 리 없다. 그저 신명 넘치는 음악과 눈길을 끄는 춤동작에 열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전통음악의 신선한 리듬감이 힙합의 랩만큼 매력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조차 잘 모르던 판소리의 가능성을 세계인들이 먼저 알아본 셈이다.

이날치는 우리 음악의 원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시대에 맞는 해석을 더했다. 전통이 현대에 어떻게 다가설 수 있는지를 연구한 음악이라 하겠다. 이들은 소리꾼과 반주자(고수) 둘이 펼치는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펼치는 집단 공연 형식으로 바꿨다. 예전처럼 판소리를 집 안에서 몇사람만 듣던 시대가 아니란 점에 주목했다.

이날치의 리더 격인 기획자 장영규씨는 이전에 경기민요를 대중화한 그룹 ‘씽씽’에서 활약한 이력이 있다. 이런 경험을 살려 판소리 고수의 북 대신 베이스기타와 드럼을 채워 넣었다. 리듬만 살려 노래의 맛을 이끄는 거다. 정통 판소리를 익힌 남녀 소리꾼 네명의 실력은 또 어떤가.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분명한 강약이 읽힌다. 그래서 이들이 부르는 묘한 리듬의 가사는 해외 유명 래퍼의 랩만큼 차지게 들린다.

이들은 귀에 콕 박히는 후렴구를 만들어 몇번 들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게 했다. 거기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그룹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노래한다. 기존 판소리가 가진 분위기를 깨고 대중음악의 요소를 입혔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이유다.

무용단의 복장도 빼놓을 수 없다. 무당 집에서 쓰는 장군 모자가 붉은 양복과 녹색 넥타이와 어우러진다. ‘추리닝’ 차림에 동네 할머니들이 으레 입던 털 달린 조끼를 걸친다. 한복을 차려입고서 놀이동산에서나 쓸 법한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걸친다. 빤짝이는 반바지엔 초립을 쓴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서양이 뒤섞인 ‘무경계’의 조합에 감탄과 웃음이 터진다. 무용단의 옷차림만큼 독특한 춤동작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어, 이게 뭐지” 하며 따라하게 되는 묘한 중독성을 품고 있다. 이들의 춤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던가. 외국에서 활약하던 무용수들의 국제적인 감각은 우리 음악과 만나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을 빚어냈다. 한류 열풍엔 이들 안무가의 역할이 컸다.

이날치는 인기의 여세를 몰아 최신 스마트폰 광고에도 등장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귀 찌어지고, 쇠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광고에 등장하는 판소리 가사다. 이 가사가 ‘수궁가’의 한 대목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던 판소리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의 숫자는 더 적었을 것이다.

판소리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시대에 맞는 옷을 입지 못했던 거다. 도포에 갓 쓰고 부채 흔드는 전통 판소리는 그 자체로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이날치 밴드의 판소리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판소리에 새 옷을 입혀 우리 전통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어서다. 또 그 진가를 전세계에 알려서다.

윤광준 (사진작가)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