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섬마을 영화 이야기

입력 : 2020-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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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째를 맞는 ‘경남독립영화제’는 올해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여름밤 영화제로 개최하려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무산된 것이다. 결국 영화제 개최 시기를 가을로 미뤘고, 장소도 외부인의 출입이 적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작은 섬인 우도로 결정됐다.

이틀간 개최되는 영화제의 두번째 날에 나의 데뷔작인 <나부야 나부야>가 상영된다는 이야기를 우도에서 주최 측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저녁 시간 15명 정도의 섬 주민들이 모여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유독 노부부 한쌍이 ‘대화 반, 관람 반’ 식으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닌가. 어찌어찌 영화가 끝났고, 주최 측 요청에 따라 감독과의 대화도 간단히 이어졌다. 그렇게 영화관이 아닌 야외에서, 그것도 섬의 야경과 어우러져 진행된 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골목이 시끄러웠다. 들여다보니 어제저녁 대화 반, 관람 반으로 영화를 보던 부부의 집이었다. 바깥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하소연하듯 어머님이 물었다. “감독님, 어제 그 영화 속 할아버지가 밥을 매일 했다며. 설거지도?” 방 안에서 그걸 들은 아버님이 큰소리로 답했다. “그거는 영화 아니가, 영화!” 다시 할머니 왈. “아이참, 어제 그거는 ‘다쿠멘타리’라 하던데.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아니고 실제라꼬. 실제 이야기! 어제 요 감독이 말할 때 뭐 들었소!”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영화를 보던 어머님이 아버님에게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아침밥 한번만 차려보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어머님은 실제로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다만 죽기 전에 하는 척이라도 한번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영화 속에는 할아버지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눈사람 두개를 만들어서 할머니에게 “이거는 자네고, 요거는 나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님은 다정한 두 등장인물이 너무도 부러웠던 것이다. 아버님께 말했더니 아버님은 “눈이 오면 내가 그것보다 몇배 더 큰 눈사람을 만들어줄게”라고 답하셨단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진해에는 한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내가 영감에게 뭘 바라겠느냐”며 한숨을 짓는 어머님이 이해가 됐다.

어머님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때 방 안에서 아버님이 큰소리쳤다. “밥 안 먹을 거가!” 어머님 한숨이 한결 거세졌다. “아이고, 내가 바랄 걸 바라야지.”

그렇게 요란스러운 아침 식사가 끝나고 마당 평상에 어머님과 나란히 앉아 물었다. “금슬 좋은 부부에게 비법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배려라고 답하던데, 그 배려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어머님은 의외로 간단하단다. “‘맞나?’ 이러면 된다. 기다, 아니다 이렇게 단정 짓지만 않으면 아무 탈이 없는데, 우리 영감은 그놈의 고집 때문에 한번도 져주는 척을 안해. 나는 고마 시끄러운 게 싫어서라도 대꾸를 안하고, 그냥 져줘. 지는 게 이기는 거거든.”

어머님이 아버님과 한평생 함께 지낼 수 있던 이유가 그러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머님이 한마디 더 얹었다. “진정한 배려는 서로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는 게 아닌가 싶어. 내가 영감한테 어떤 걸 묻더라도, 혹시 자기 뜻에 안 맞더라도 그냥 ‘맞나?’ 요래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배려 아닌가? 나는 알겠는데 우리 영감은 왜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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