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세상은 예정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입력 : 2020-06-26 00:00

경기 연천에서 딸기농사를 하는 친구가 지난해 새 건물을 지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한 딸기를 직판하기 위한 공간이다. 소비자를 위한 체험공간으로도 쓰기로 했다.

친구의 딸기는 당도가 높고 알이 굵기로 소문나서 단골손님을 꽤 많이 확보했다. 농원은 인터넷 판매로 얼굴을 익힌 사람들과 동남아의 관광객까지 들르는 여행 코스로 자리 잡았다. 내부엔 멋진 의자와 성능 좋은 커피머신을 들여놓아 서울의 유명 카페 부럽지 않은 분위기를 뽐냈다. 딸기를 매개로 먹고 즐기는 쉼터라는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의욕적으로 벌인 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반년이 넘었다.

결국 모두가 겪고 있을 심리적 공황 상태가 친구에게도 찾아왔고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를 보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사람들로 북적여 매출이 높아졌을 텐데, 친구는 상환금 일부를 갚느라 바빴다. 친구는 조바심을 냈다. 무엇보다 빚을 무서워하는 친구이기에 당연했다. 멋진 건물을 지었다는 자부심은 이내 후회로 바뀌었다. 농원을 시작하고서 2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충격은 컸다. 친구는 그동안의 경험에 따라 건물을 신축하면 수익이 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역병’이란 변수가 그 확신을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친구의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게 살아와서다.

하지만 우울함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이윽고 친구는 부진의 원인이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반복하며 익숙해진 삶의 방식대로 대응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냉철하게 돌아봤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방식을 충실히 따르기만 했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친구는 변화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하진 않았지만.

친구는 삶이란 흔들리는 배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이란 것을 새삼 확인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물이 항상 출렁인다는 사실뿐이다. 또 세상은 정해진 법칙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대신 벌어진 일을 수습하다보면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되짚으며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선택의 갈림길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독한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것이며,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계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불길한 예측은 틀리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괴로워할 일만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변화에 대처했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희망의 선택지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미래는 아무것도 예정되지 않았다. 닥치기 전엔 대응법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지금 우리는 미래를 가를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펼쳐진다.

친구는 고민 끝에 딸기 재배시설에 더 투자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혼자서 농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스마트농법과 특수 비료도 개발하기로 했다. 딸기가 맛있으면 그다음은 저절로 잘되리란 확신이 굳어진 것이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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