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양자방지부모은(養子方知父母恩)

입력 : 2020-05-22 00:00 수정 : 2020-05-22 23:58

“양자방지부모은(養子方知父母恩)이라…. 내가 자식을 낳아 길러보고서야 비로소 부모 은혜를 안다는 뜻이라. 부모한테 잘한다는 건 별다른 게 없다. 들은 것, 본 것 이야기해드리고 몸이 아프면 어디 아픈지 여쭤보고 약 지어드리고. 또 부모한테 나쁜 짓, 나쁜 소리 안하고. 그게 효자라, 효자!”

경남 고성에 사시는 올해 87세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할아버지는 부모님 산소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난 뒤 홀로 남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때 산소 옆 취나물밭에서 잡풀을 매고 계시던 할머니가 불쑥 끼어든다.

“겨울이면 늘 영감이 시아버님 방에 들어가서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고 따뜻하면 방에 돌아오고 추우면 군불을 더 넣어드리고서야 돌아왔어. 그렇게 해야 자기가 마음 놓고 잔다고. 평생을 그렇게 했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세월이 갈수록 부모의 사랑과 은혜가 더 그리워진다는 할아버지. 장남인 할아버지는 집이 어려워 일찍이 책보따리 대신 똥장군을 졌다. 서당에 다니던 친구들이 부럽던 그 시절, 할아버지는 똥장군을 짊어지고 밭으로 곧장 가지 않고 일부러 서당 앞쪽으로 돌아가면서 담 너머로 들리는 한문 소리를 듣고 천자문을 하나둘 익혔다고 한다.

천자문을 술술 노래하듯 외면서도 제대로 못 배운 게 한이 됐다는 할아버지. 다시 어린 시절로 간다면 한문 공부를 열심히 해 나중에는 아이들 가르치는 훈장이 되고 싶단다.

“부모님이 나이가 많아서 내가 일찍 장가를 갔어. 장가가고 나서는 글이 머리에 잘 안 들어와. 그래서 그만뒀지. 밥 먹는 것도 때가 있고, 잠자는 것도 때가 있고, 공부도 때가 있는 기라.”

사실 할아버지가 글공부를 포기한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이 나이가 많아 공부보다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장남만 아니었다면 계속했을지도 모른다”고 푸념 섞인 말투로 말하면서도 세상 어디에도 없을 법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비록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포기했지만 부모님을 위해 살아온 것에는 후회도 여한도 없다는 의미로 보였다.

5월8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전에 없던 어버이날 풍경이 펼쳐졌다.

한 기사를 보니 어느 요양원의 면회가 마스크를 쓴 채 유리문 밖에서 전화통화로 이뤄졌단다. 유리문에 손바닥을 댄 채 칠순의 아들이 부모를 보며 울먹였다는 기사를 보니 가슴이 저렸다. 그 어머님은 매주 찾아오던 아들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글을 쓰며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저린다.

내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은 아예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병원 간호사에게 근황을 묻는 데 그쳤다. 벌써 못 뵌 지 4개월이 다 돼간다. 찾아뵐 때마다 매번 꿈 이야기를 하셨던 어머니. 지난밤에는 또 어떤 꿈을 꾸셨는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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