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비가 내려야 무지개가 뜬다

입력 : 2020-04-10 00:00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판소리 단가 ‘사철가’의 한 대목처럼 산과 들에 하얗고 노란 봄꽃들이 만발했다. 하지만 시골마을은 봄의 흥취를 느낄 수 없이 조용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두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한 것이다. 마을회관도 굳게 닫혔다. 그래도 들녘엔 젊은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자랄 만큼 자란 양파며 마늘 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집 하나가 나온다. 할머니 두분이 널찍하게 거리를 두고 아무 말 없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계신다. 한분은 파란색 방한용 마스크를 했고, 한분은 일모자만 쓰고 있다.

“할머니는 왜 마스크를 안 쓰세요?”

“집에 있다. 이거라도 쓸까” 하며 일모자에 달린 입가리개를 쓰신다.

“왜 바닥에 앉아 계세요?”

“회관 문을 잠갔다 아니가. 그러니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갈 데가 어딨노. 시장도 안 가고, 애들이 사놓고 간 것 먹고 그란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오데 밖에 나가면 안된다고 하니…. 심심해서 방구석 청소하고 단지에 넣어둔 소금 꺼내서 말리고, 마당이나 왔다리 갔다리 하고. 멀리 간다 하는 게 요 앞 남새밭에서 풀 매는 거, 거기가 제일 멀리 가는 거다.”

“옛날에도 이런 게 있었습니까?”

“홍역 뭐 이런 거였지. 그땐 뭔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죽은 사람도 많았지. 그래도 요거(코로나19)는 약이 없어 그렇지 뭔 병인가는 안다 아니가. 세상이 이렇게 디비지는(뒤집히는) 거는 처음이라. 길게 가면 우울증 오긋다.”

파란색 방한용 마스크를 쓴 할머니가 거든다.

“많이 살았응께 우울증 그기야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지금 몇달째 이러노. 맨날 텔레비전만 보니까 눈이 아파, 눈이.”

그렇게 또 두분은 한참 동안 말없이 돌부처 마냥 앉아 계신다. 그러다 마스크를 낀 할머니가 다시 말을 꺼낸다.

“애들이 걱정이지 뭐. 늙은 우리야 살만큼 살았고 자식들은 아직 한창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데. 회사를 안 갈 수도 없고, 안 그렇나? 손자들도 학교에 못 가고 저리 집에만 있으니까 걱정이다, 걱정. 사람하고 거리를 두라 카는데 그게 쉽나.”

할머니는 한숨을 내쉰다.

“할머니 저도 답답합니다. 이게 언제나 끝날까요?”

“뉴스 보니까 여름 되면 끝날 거라 그라대. 시작이 있응께 끝도 안 있긋나. 그러니까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꽃구경 가지 말라면 안 가고, 언제까지 집에 좀 있으라 하면 있고, 모두 힘을 내서 이 시기를 잘 넘겨야 안되겠나. 꽃은 내년에도 또 피니까 꽃구경은 그때 가면 되고.”

“그래도 너무 길어지니까 지칩니다.”

“어렵다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지. 바람도 불어야 잠잠해지고 비도 내려야 그치는 기라. 무지개도 비가 와야 뜨지, 안 그렇나?”

최정우 영화감독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