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시간의 여유’라는 선물

입력 : 2020-03-20 00:00 수정 : 2020-03-21 23:36

눈만 뜨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뉴스가 이어진다. 석달 가까이 지속된 불안과 혼란의 시간은 그야말로 ‘역병 대란’이라 부를 만하다. 지구촌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지켜보는 중이다. 이제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선 어디도 안전할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불안과 공포는 당연하다.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때 인간의 두려움은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우린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그 사이의 공백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답답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방역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지나온 경험들에서 찾아낸 대비책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테니까. 우선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이 중요하다. 사람간 접촉빈도가 늘어나면 감염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게 확인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될 수 있으면 집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의 단절로 생기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경제적 고통까지 이겨내라는 거다. 물론 그 파장은 만만치 않다. 나 또한 두달 동안 일감을 찾지 못했다. 예정된 일정은 모두 취소됐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이어질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통의 시간은 다른 한편으로는 원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생긴 여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평소의 불만을 없앨 좋은 기회다. 먼 산도 보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며 평소 나누지 못했던 가족끼리의 대화도 이어볼 일이다.

나도 모처럼 시간적 여유를 누리게 됐다.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다짐만 했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를 찾는 전화도 오지 않는다. 내일 아침 일찍 가야 할 업무회동도 없다.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낸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한 행간의 의미까지 다가온다. 호사를 부려도 좋겠다.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이나 하인리히 비버의 로자리오 소나타가 공간을 메우게 하면 된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보고 싶은 책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여유를, 나는 평소에는 지니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보지 못한 영화도 쌓여 있다. 넷플릭스만 봐도 세상의 좋은 영화는 다 있는 듯하다. 영화 한편의 러닝타임이 대개 2시간 안팎이니 영화 세편을 본다 해도 6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루에 영화 세편을 봤던 기억이 얼마나 오래됐던가. 세상의 명화는 다 보고야 말겠다는 귀여운 결심을 했던 청년 시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항상 소망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걸 막을 수 있다. 세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얻었을 때 햇볕을 가릴 모자를 부탁해 소원 하나를 날려버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늘 시간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코로나19가 기회를 줬다. 시간의 여유라는 선물을 말이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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