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노모(老母)의 기도

입력 : 2020-03-13 00:00 수정 : 2020-03-14 23:48

올해로 아흔살이 되셨다는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결혼 안한 딸과 같이 산다고 했다. 따님의 것으로 보이는 소형차가 마당에 주차돼 있었다. 영감님은 5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몇달 전 딸이 다리가 아파 수술을 했고,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무릎관절 수술하셨어요?”

할머니는 대답을 미룬 채 나무기둥에 걸려 있는 염주를 양손에 쥐고는 한알 한알 넘기신다.

“그때야 눈뜨면 밭고랑에 엎드려 풀 맨다고, 일 철이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들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거든. 애들 챙기고 그럴 시간이 어딨노. 저그(자기)들끼리 놀다가 배고프면 큰애가 밑에 것들 챙겨 먹이고,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살았어.”

할머니는 다섯남매 중 막내딸이 일곱살이 돼서야 소아마비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날도 밭에 나가 종일 일하고 해질 무렵에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리고 있는데 애가 마당에서 마루를 못 올라오는 거라. 그래서 내가 끌어올려 방에 데리고 갔어. 다리를 살펴도 괜찮더라고. 웃통을 벗겨서 등허리 쪽을 보니까 뼈가 손가락 한마디쯤 튀어나와 있더라고. 그때부터 용하다는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괜찮아질 거다 해서 집에서 지켜만 봤지. 그 뒤로 좀 나아지는 줄 알았지. 잘 놀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세월을 보냈는데 이젠 딸아이가 오십살이야. 나이가 들면서 상체가 커지니까 무릎에 무리가 간 거라. 그래서 저그 오빠가 부산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이번에 수술했다 아니가. 여태 이 집에서 나랑 같이 살았는데,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야.”

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얘기를 듣고 있는데 할머니가 마당에 세워진 차를 가리킨다.

“저 차가 우리 애가 타던 건데, 내가 저걸 보면 조금 마음이 놓인다.”

병원에 가려고 해도 다른 자식들이 말렸다고 했다. 괜히 어머니 마음 아파하실까봐 못 오게 한 것이다.

“전화는 주고받고 하는데…. 전화하는 것 하고 얼굴 보는 것 하고 같나.”

마당에 서 있는 따님의 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숨만 내쉰다. 그러다 염주알을 계속 돌리던 할머니가 불쑥 목소리를 낸다.

“막내야. 어떻게 하든 훌훌 털고 다 나아라. 새 근육 얻어서, 새 사람 돼서 네 발로 걸어서 들어오니라.”

그러고선 합장을 하신다.

석달 열흘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찬물에 머리 감고 목욕하고 기도를 했다는 할머니. 같은 동네에 사는 친척들이 말려 지금은 머리만 감는다는 할머니. 그의 간절한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집이라도 갔더라면 남편이나 자식들이 옆에 있어 줄 건데. 지도 혼자고 나도 혼자고…. 너를 이렇게 만든 내 죄가 크다, 막내야.”

할머니는 막내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대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염주알을 넘기신다. 염주알이 닳도록 간절히 문지르는 할머니. 할머니는 그렇게 가슴에 남은 큰 멍울을 녹여내는 듯 보였다.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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