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공포

입력 : 2020-02-28 00:00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요즘은 나의 초긍정적 성격도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이다.

특정 지역에 일어난 재난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고, 길거리에서 중국어를 하는 사람만 봐도 흠칫 놀라며 피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않고, 진원지인 중국이 미워 짜장면도 안 먹는다. 지역감염이 늘어나서 이젠 외국에서 온 이들만이 아니라 누군가 기침만 해도 불안하다. 더욱 속상한 것은 나의 주요 수입원인 강의가 줄줄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사람을 모아 강의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과 시민의식, 정부의 대처 등을 믿으며 사태가 곧 진정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난히 활발한 몇몇 감염자 덕분(?)에 갑자기 확진자가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니 여름이면 사태가 수그러들 거라고 한다. 여름까지 돈을 못 벌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가을, 아니 연말까지 갈지도 모른다.

막연한 공포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품게 하는 것을 넘어 자존감까지 지하실로 끌어내렸다. 자격증이라도 따놓을걸. 부지런히 돈을 모아 오피스텔이라도 사서 세를 받는 안정적 수입원을 만들어놓을걸. 그러지 못한 무능한 나를 스스로 한심해했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지인을 만났다. 중국 등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여성이다. 그는 홍콩시위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수입 대부분이 줄었거나 위험지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위험수당이라도 줘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지출이 2배로 늘어났단다. 그런데도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걱정한다고, 노력한다고, 두려워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란 것을 받아들였죠. 저만 겪는 고통도 아니고요. 저보다 규모가 큰 항공사나 여행업체 등을 생각하면 구멍가게 정도인 제 손해는 엄살 수준이거든요. 덕분에 시간 여유가 생겨 바빠서 못 읽던 책도 읽고 요가와 명상도 해요. 몸의 건강만큼 마음 건강도 중요하니까요.”

불안과 스트레스 탓인지 유난히 피로하고 두드러기도 났었다. 그런데 그의 여유로운 표정과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공포가 면역력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주범인지도 모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문득 해마다 가뭄이나 홍수 때문에 일년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나, 온갖 질병으로 자식같이 아끼는 소·돼지·닭을 잃은 축산농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들의 아픔이나 손실을 진즉 헤아리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가장 확실한 것은 곧 봄이 오고 여름도 머지않았다는 것. 요즘처럼 여름과 더위를 기다려보기는 처음이다. 바이러스는 죽이고 홍수나 가뭄은 없는 착한 여름이 오기를….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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