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봉준호가 시대의 영웅이다

입력 : 2020-02-21 00:00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탄력이 붙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좋은 소식이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어 ‘최우수작품상’을 받을 땐 탄성까지 질렀다. 우리나라 영화가 남의 몫으로만 여겼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정한 주인공이 돼서다. 막연하게 품고 있던 문화적 열등감이 해소된 느낌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는 건 노벨상을 받은 것만큼 의미를 둘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사건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100년 만에 이룩한 최고의 성과다. 열광은 당연했다.

연일 봉 감독과 영화 <기생충>을 다룬 신문기사와 방송이 잇따른다. 평소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감독의 이력과 재능에 관한 이야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재미없고 피곤한 정치판 이야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공포를 확산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축하·격려할 만한 대상을 갖게 됐다. 기쁨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낡은 반복을 뒤집는 이런 신선한 자극이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 혹은 대단한 업적을 보는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뜨거운 환호와 칭찬 일색의 반응이 끝나면 다양한 흠집 내기가 이어진다. 시기와 질투의 시선도 따른다. 그리고 ‘나는 달라’라는 식의 잘난 척하는 이들의 비평도 빠지지 않는다. ‘최우수작품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후원사의 로비로 상을 받게 됐다는 ‘친절한’ 분석도 이런 맥락이다.

이같은 시기·질투의 시각과 달리 봉 감독의 수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방향을 바꿔놓은 대단한 사건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인의 보편적 문제로 공감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대립과 갈등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 영화 한편이 주는 울림은 대단했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를 공감의 언어로 풀어낸 감독의 역량을 높이 사줘야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가 재미없다는 이들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상을 받았다고 누구에게나 재밌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봉 감독의 존재는 각별하다.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아티스트의 영향력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우리는 현재와 호흡하는 영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있다 해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같은 박제된 과거의 영웅들뿐이다. 영웅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한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강력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성공한 봉 감독 같은 인물이 영웅이다. 새로운 세대가 구체적인 꿈을 꾸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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