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따신 쌀밥 한그릇

입력 : 2020-02-14 00:00 수정 : 2020-02-15 23:34

촬영을 가면 TV가 고장났다며 무턱대고 고쳐달라는 어르신들이 많다. 방송국에서 나왔으니 잘 고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게다. 그런데 한 마을은 도착하자마자 부녀회장이 꼭 취재해야 할 분이 있다며 앞장서 골목길을 올라갔다. 철대문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꽤나 높은 곳에 있는 집이다.

경남 함안에서도 오지로 소문난 곳이었다.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일 정도로 사방이 큰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그래도 코끝을 스치는 공기만은 ‘1급’이다. 폐 속 깊은 곳까지 청량하게 해줬다.

인기척에 방문이 열리고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분이 나오셨다. 부녀회장이 나를 대신해 소개했다. “오늘 우리 동네 촬영을 나온 방송국 양반입니다. 어르신, 하고 싶은 이야기 오늘 다 하세요.”

올해 89세가 되셨다는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여기다 대고 하면 되나?” “네” “하까? 우리 영감이 군대에 가서 병을 얻어 돌아갔으니 나라가 나를 도와줘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배가 고파서 쓰레기를 주워 먹었다고 해. 6년 만에 제대했는데 집에 와서 기침을 많이 하더니만 마흔넷에 돌아갔어. 군에 가서 병을 얻어 죽었으니 내가 국가혜택을 좀 받아야 되겠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전투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어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듯했다. “국가보훈처에 신청은 해 보셨느냐”고 물었지만, 청력이 좋지 않은 할머니는 여전히 일방통행이었다. “나 혼자 5남매를 키우면서 먹고산다고 산에서 나무를 해 와. 머리에 나무를 이고 20리 떨어진 시장에 내다 팔면 보리쌀 한되 살 수 있어. 그걸 맷돌에 갈아 쑥을 넣고 삶아서 먹고살았어. 그때 무거운 짐을 머리에 많이 이고 다녀서인지 지금은 귀가 안 들려.” “그렇게 5남매를 키워냈어요?” “그래.” “할머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훌륭할 게 뭐 있노.”

갑자기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시고는 꺾이고 휜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남몰래 동네 구석구석 다니면서 울었지. 구석구석 다니면서 남이 안 보는 데서.”

할머니 집의 방문 위에는 여러개의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사진 하나. 5남매가 모두 모여 활짝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꽃 같았다. 모진 세월 자식들을 키워낸 할머니의 몸이 꽃으로 형상화된 듯했다.

“할머니, 국가혜택은 둘째치고 영감님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까?” “있지.” “뭡니까?” “생전에 쌀밥 한그릇 못 먹고 간 게 지금도 걸리지. 지금은 흔한 게 쌀인데. 나는 살아 있으니까 좋은 일도 보고 잘 먹고 하는 데…. 쌀밥 한그릇 못 차려준 그게 항상 마음에 걸리지.”

할머니는 비록 모진 세월이었어도 영감 몫까지 산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원도 한도 없단다. 다만 한가지 소원이 있다.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가면 우리 영감 꼭 만나서 생선 한마리 굽고 따신 쌀밥 한그릇 해서 꼭 차려 줄 거야.”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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