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까치밥

입력 : 2020-01-10 00:00 수정 : 2020-01-12 00:00

낙동강을 따라 기다랗게 뻗은 기찻길 옆. 매실농원들이 근처에 즐비한 경남 양산의 원동역을 지나 배내골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하늘과 맞닿은 곳에 마을 하나가 있다. 예닐곱 집이 모두 한곳을 내려다보듯 터를 잡은 마을이다. 그중 한낮인데도 굴뚝에서 연기가 연신 뿜어져나오는 집으로 향한다. 그 집은 다른 집들보다도 산 정상 쪽에 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숨을 한번 고르고도 다시 20여m는 더 올라야 한다.

간이 패널로 처마를 낸 집 안쪽에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래채 구석진 곳에서 뭔가 삶는 할머니가 보인다. 솥뚜껑이 열리자 이내 솥 안의 김이 할머니의 상반신과 얼굴을 모두 뒤덮는다. 건네는 인사를 못 들었는지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다시 한번 인기척을 내니 그제야 솥뚜껑을 닫고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온다.

“삶고 있는 게 뭡니까?” “메주콩.” “메주는 다 쑨 것 같은데….” “저건 청국장 뜨려고.” “맛 좀 봐도 되겠습니까?” 할머니는 솥뚜껑을 열고 나무주걱으로 메주콩을 떠서 먼저 맛을 본다. 그러고선 주걱을 건넨다. “먹어봐. 정말 맛있어.” 손에 잡히는 대로 몇알 집어 맛을 본다. 할머니의 손맛이 어우러져서인지 콩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할머니 말씀대로 정말 맛있다.

“청국장 띄워서 할머니 드시게요?” “아니, 팔려고.” “어디? 시장에요?” “구포시장.” 그러고 보니 할머니 바로 옆에는 쌀 한말은 족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가마솥 두개가 걸려 있다. “저거는 손두부 만드는 솥.”

할머니는 철마다 시장에 가지고 가는 물건들이 다르다. 주로 밤·고사리·손두부를 판다.

방으로 들어간 할머니가 인스턴트커피 한잔과 플라스틱 의자를 내온다. 서른여섯살에 혼자가 된 할머니는 그때부터 40년 동안 구포시장에 나가 찬거리를 팔았다고 한다. 자식들 뒷바라지 다 하면 끝내려고 했는데 큰아들과 며느리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스물다섯 된 큰손자와 함께다. 그 손자만 장가보내면 이제 이 장사도 끝내야지 생각한다.

말씀 중에 내민 오른손을 보니 중지와 약지에는 손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니, 남아 있다기보다 ‘맨살 위에다 인위적으로 간당간당 붙여놓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 손톱은 할머니의 지난 40년 시간을 고스란히 보관해둔 ‘세월의 창고’와도 같아 보인다.

“할머니 손 보니까 큰손자가 당장 장가를 가야겠네요.”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장가는 장가고…. 이제 할머니 나이 생각하셔서 그만하시고 건강 챙기셔야겠어요.” “할미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힘들어도 해야지. 내 손자 도와주려고 하는 일인데 뭐가 힘들어. 하나도 안 힘들어. 할 수만 있다면 내 살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마음인걸.”

담장 너머 감나무에 달려 있는 까치밥 하나가 보인다. 마치 손자를 위해서라면 당장에라도 내어줄 수 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남은 육신 한조각처럼.

최정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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