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한해 마무리는 휴대폰 속 사진 정리부터

입력 : 2019-12-13 00:00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기 전 사진부터 찍는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인증샷’을 찍는 건 기본이다. 주차 위치를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어둔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은 반가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여행을 가면 화사하게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새 옷을 사도 사진을 찍는다. 정 찍을 게 없으면 씩 웃는 제 얼굴이나 발 사진이라도 남겨둬야 직성이 풀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사진은 요긴한 수단으로 쓰인다. 이제 모두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루를 사는 느낌이다. 누군가 우스개로 말하는 ‘전 국민의 사진작가화’는 진작에 이뤄진 셈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들은 우리의 일상을 가장 세밀하게 정리한 기록물로 남게 됐다. 역사상 누구도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촘촘한 기록으로 남겨둔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잠시도 떼어놓지 못하고 사는 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사진은 찍을 때는 모른다. 별 생각 없이 찍은 사진들이 쌓이면 읽어낼 내용이 많다는 점을. 몇달 혹은 일년 동안 찍은 사진들을 꺼내볼 때 알게 되는 일이다. 찍은 사진의 숫자가 고작 몇장이라면 단지 순간의 모습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양이 몇백장, 몇천장이 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자신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이 사진으로 남아 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희미해진 기억을 대신한 사진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름다움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게 한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기록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러나 삶의 풍요를 위해서는 다소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 되는 법이다. 분류와 정리를 거치지 않은 사진은 쓰레기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들은 아마도 기기를 산 이래 한번도 분류와 정리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쌓여 있을 확률이 높다. 내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마트폰 속의 사진파일을 컴퓨터에 백업해둘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바꾸며 이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통째로 버리는 경우도 있다.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자동 분류·저장 기능을 사용하면 이 과정이 수월하다.

하지만 사람은 제 손을 거쳐 직접 선택한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스마트폰 속의 사진을 개인용컴퓨터(PC)로 백업해 정리해보자.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선 좋은 사진만 남기고 쓸데없는 것은 버린다. 중복되는 장면과 내용이라면 아까워도 과감하게 삭제한다. 다음은 적당한 분류 기준에 따라 폴더를 만들어 저장한다. 여행·가족·일상 같은 큰 카테고리면 충분하다. 마지막은 눈에 띄는 사진에 직접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사진의 의미는 제목을 붙이는 순간에 생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 한구절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살아온 흔적을 소중히 여길 때 삶이 중요해진다. 한해의 마무리로 스마트폰 속의 인상적인 사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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