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작별

입력 : 2018-11-09 00:00


인생을 구성하는 두 단어가 ‘만남’과 ‘관계’라면 헤어짐 또한 피해갈 수 없다. 작별은 준비된 작별과 준비하지 못한 작별로 나뉜다. 올해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신작소설 <작별>의 주인공은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 어느 겨울날 공원 벤치에서 가난하고 젊은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눈사람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된다.

눈사람이 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남자친구는 어떻게든 눈사람이 된 여자친구를 위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수록 더 빨리 녹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의 손을 잡을 수도 없으며,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서서히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한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아들을 도저히 전 남편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남겨질 아들을 부탁한다. 급기야 아들을 집앞으로 불러내 눈사람이 된 자신을 보여준다.

열네살 때 어머니를 여읜 나는 이 대목에서 뭉클하니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그동안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심정만을 품은 채 살아왔다.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지 못했었다. 암을 선고받고 투병하던 석달 동안 어쩌면 엄마와 나는 충분히 작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 슬픔의 응어리가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아 있는 듯도 하다.

주인공은 이미 많이 녹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들에게 떠나는 엄마의 마지막 당부를 이어간다. 엄마에게 편의점 냉장고라도 들어가자고 하는 아들의 애틋함도 뒤로하고 세상과 차근차근 작별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이라고 불렸던 수십년을 돌아보며 억울해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운명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도, 나 자신과도 작별해야 한다. 그 작별이 충분히 준비된다면 슬픔의 깊이는 깊어져도 상처는 훨씬 작아질 것이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소설가 리처드 포드가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슬픔은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지만 충분한 애도를 통해 슬픔을 다스린다면 평범함 속에서도 위대함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곧 2018년을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한다. 12월이 돼서야 바쁜 일정들 사이로 서둘러 한해를 마무리하게 되면 많은 것들을 놓칠 것이다. 올해만큼은 조금 일찍 한해를 돌아보고 2019년을 열심히 살아갈 나 자신을 기다리기 바란다. 후회보다는 사랑으로 나 자신을 격려하자. 올 연말에는 모두가 행복하기에 앞서 아무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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