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쇼핑 안식년에서 나를 찾다

입력 : 2018-08-10 00:00


평소 멋쟁이로 소문난 커리어 우먼을 만났다. 워낙 패션감각이 뛰어났지만 더 근사해진 모습이었다. 비결을 물었더니 “‘쇼핑 안식년’을 가져서”라고 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쇼핑 안식년을 갖고 1년 동안 식료품 등 생필품만 빼고 다른 물건을 사지 않고 살았다는 기사를 봤어요. 마침 옷장이며 수납장이 넘쳐 고민이었기에 저도 한번 따라 해보자고 생각했죠. 일단 옷·가방·구두·액세서리만이라도 사지 말자고 결심하고 실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먼저 갖고 있는 물건들의 정리부터 시작했다. 2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옷·가방·액세서리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기부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아, 이건 살이 빠지면 다시 입을 수 있는데…” “이 가방은 아무개가 선물한 건데…” “이 구두는 분명히 다시 유행이 돌아오면 신을 수 있을 거야” 등 온갖 핑계와 구실이 떠올랐지만 단호하게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 추억이 있는 물건은 사진을 찍어뒀다. 그리고 냉장고의 남은 식재료로 ‘냉장고 파먹기’를 하듯 남은 물건들로 일단 6개월을 버텼다.

물론 처음엔 금단현상에 시달렸단다. 쇼윈도의 옷들이 ‘왜 나를 안 보는 거야? 왜 날 안 데려 가느냐!’고 소리치는 듯한 환청 증세부터 이유 없는 우울증까지 생겼단다. 그래도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쇼핑의 유혹을 물리쳤다. 쇼핑을 하지 않아 생긴 경제적 이익 외에 어떤 것을 얻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 자신의 개성과 취향, 즉 저를 잘 알게 되었죠. 고르고 골라 남긴 물건들을 보니 제가 어떤 색깔이나 소재·디자인을 좋아하는지가 뚜렷해져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저 습관처럼 이것저것 사서 쌓아두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좋은 물건의 가치도 알게 되었고요. 제겐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어요.”

아무리 고가의 옷·가방·스카프 등으로 온몸을 휘감아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 역시 더이상 뺄 게 없을 때 제대로 드러난다.

1년의 쇼핑 안식년을 보낸 후 그는 이제 유행하는 제품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물건을 선택한다. 나와 만난 날도 그는 귀여운 물방울무늬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는 동대문시장에서 2만원을 주고 산 것, 바지는 20년 전 구입한 고가품인데 몇번 안 입고 옷장에 처박아두었다 다시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과 시대를 초월해 가장 그 사람답게 보여 감탄사가 나왔다.

어디 패션용품뿐일까. 소유의 안식년, 아니 안식월이라도 실천해봐야겠다. 돈을 절약하는 것보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확인해보고 가장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다움’을 발견하고 싶다. 늘 남들만 흉내 내고 사느라 잃어버렸던 나를 찾으려면 나를 짓누르는 물건들부터 치워내야겠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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