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위를 봐요

입력 : 2018-04-27 00:00


매년 3월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린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 도서전에서는 ‘어린이들’이라는 뜻을 가진 볼로냐 라가치상이 부문별로 선정된다. 한국 작가들은 일찍부터 이 상을 타왔다. 올해도 세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동화 <벽>으로 예술·건축·디자인부문 상을 받은 정진호 작가는 3년 전 <위를 봐요>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인 오페라 프리마를 수상하기도 했다.

<위를 봐요>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수지가 고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일상을 평면으로 그려낸다. 수지는 사람들에게 “위를 봐요”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위를 보고 수지에게 내려오라고 한다. 수지가 내려갈 수 없는 사정을 전하자 아이는 수지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물한다. 바로 땅바닥에 누워서 수지와 대화를 한 것이다. 이 그림책은 흑백이다. 마지막에 여러사람이 누워서 수지와 대화하는 장면이 천연색으로 바뀌며 수지에게 새로운 세상이 드러난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의 엄정순 작가는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미술교육을 담당하는 화가다. 이 책은 시각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촉각·상상력을 동원해 아이들이 본다고 느끼는 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과정을 다루고 있다.

특별히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 어린이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지며 느끼는 바를 그리게 한다. 이를 위해 어린이들은 태국까지 가기도 한다. 엄 작가는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느끼는 세상을 그리며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위를 봐요>는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됐다.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은 한국어판과 사뭇 달랐다. 흑백인 원작과 달리 불어판은 표지에 빨간색이 추가됐고 글자에 보라색을 입혔다. 그들이 “동화책은 색깔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단다. 영어판은 판형이 작아졌고 노란색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수지가 장애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 첫쪽이 빠져 있었다.

이유를 묻는 내게 작가는 답했다. “그들 문화권에서는 장애를 갖게 된 이유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네요.” 작가는 흔쾌히 동의했고, 문화권을 존중한 번역본이 나오게 됐다.

인터뷰에서 만난 두 작가의 얼굴은 참 맑았다. 무엇보다 두사람의 공통점은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그들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어린이날이 있는 5월,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의 시선도, 어린이의 시선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우리가 보는 것을 보라고 했을 뿐이다. 엄 작가는 말한다. “나와 다름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도, 어린이도 ‘그들’이 아니라 ‘우리’이기 때문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