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기후위기는 저절로 물러나지 않는다

입력 : 2020-04-08 00:00

유독 찬란한 봄이다. 미세먼지가 줄어서 그런지 공기도 맑아진 것 같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지만 미국과 유럽 등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하도 엄청나서 그런지 처음 사태가 일어났을 때 비하면 경각심이 많이 줄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방역성과도 인정받았겠다, 의료가 새로운 한류의 선봉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아직 학교는 정상화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는 기운이 감지된다.

코로나19가 기후위기로 치닫던 지구에 전화위복이 되고 있으며, 일단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재난의 와중에 피어난 연대와 성찰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는 예측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역병의 한가운데 있는 나라들에서도 그런 희망 어린 예측은 존재한다. 봉쇄령이 내려지자마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돌고래가 돌아왔다는 뉴스는 가짜로 밝혀졌지만, 위성사진은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이 줄어들면서 중국과 유럽은 물론 인도 뉴델리의 하늘도 모두 깨끗해졌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러 사람의 바람대로 100년 만에 가장 대단하다는 이 역병을 계기로 기후위기가 저절로 해결될 수도 있을까? 먹이를 주던 관광객이 사라지자 태국의 거리를 점령한 원숭이떼들이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적이 끊어지자 영국의 웨일스마을을 한가롭게 누비는 야생염소들을 보노라면 목가적 희망이 들기도 한다. 이대로 인간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이제껏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 더미나 기후위기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판명이 나서, 스르륵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크루즈산업은 회생이 어려워 보이고, 항공산업도 축소가 불가피할 테니 이대로 화석연료 수요가 줄어들면 좋겠단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 이 사태를 겪으면서 재택근무가 힘들거나 불확실한 개학 일정에 속이 타는 정도의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위기가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며 마냥 긍정적인 예측을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하다. 코로나19 자체도 그렇지만 코로나19가 파괴한 일상의 대가 역시 모두가 고루 치르지는 않는다. 위기를 구제하기 위한 금융 지원이 여전히 대기업 위주인 상황에서 지역의 영세상인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이만큼이나 막아내는 데 공공병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도, 경제위기 담론 속에서는 공공성 강화라는 방향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회가 바라는 경제회복이 과연 이전의 소비사회로 돌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도 따져볼 문제다.

지금 당장의 위기를 건너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다가오는 더 큰 위기에 대비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의 창궐은 기후위기의 일부이며, 전염병위기를 넘어 경제위기까지 뛰어넘는다고 하더라도 기후위기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섣부른 낙관보다 냉정하게 위기를 직시하는 것은 코로나19로 희생된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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