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기생이냐 공생이냐, 그것이 문제다

입력 : 2020-03-04 00:00 수정 : 2020-03-04 23:36

“인간이 공생에 실패하는 모습을 비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공생의 의미를 다루고 싶었다.”

아카데미상을 네개나 차지한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최근 일본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목에 이끌려 ‘기생’을 생각하지만 봉 감독은 작품을 통해 ‘공생’을 숙고했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기생은 숙주가 있어야 한다. 기생생물은 숙주 속에 파고들어 영양분을 빨아먹고 산다. 기생생물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숙주에게는 도움될 일은 거의 없고 손해가 될 뿐이다.

영화 <기생충>은 부잣집을 숙주로 그 집에 온 가족이 파고들어와 빨아먹고 사는 가난한 집을 기생충으로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나 문학작품에서는 욕심 많고 포악한 부자에게 선량한 빈자가 시달리다 못해 폭동으로 상황을 뒤집는 경우가 많았다. 로빈후드의 이야기가 그렇고 임꺽정 이야기가 그렇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부자 가족은 악독한 면도 없고 갑질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꾸며낸 거짓말을 잘 믿어 속아 넘어가는 순진함까지 있다. 반면에 가난한 가족은 온갖 속임수를 써서 부잣집에 파고든다. 속임수가 성공할 때마다 쾌재를 부르는 배우들의 표정과 표현이 절묘하다. “부자들은 원래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많기 때문에 욕심이 필요 없는 거야”라는 대사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진 이들에게 약간씩 뜯어내는 것은 비윤리적인 게 아니라는 자기합리화와 도덕불감증이 들어 있다.

이처럼 미묘한 균형점을 유지하면서 오래 지속될 것 같았던 두 가족의 공존은 왜 깨지게 됐을까. 이들은 기생의 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공생의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생은 오직 자신의 생존이 중요한 반면 공생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공생이 가능하다.

영화에서 두 가족은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생각하고 행동할 뿐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뜯어먹자’는 쪽과 ‘고용한 사람은 부려 먹다가 내보내면 된다’는 쪽으로 나뉜다. 부잣집 주인은 착취하거나 갑질은 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 터놓고 지낼 인간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사는 집이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른 종족으로 여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지는 않지만 차이를 두고 차별한다. 봉 감독은 이런 차이를 ‘냄새’로 상징화하고 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우리와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듣던 “노는 물이 다르다”보다 훨씬 모욕적이며 정신적 폭력이다.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는 정글에서 야생동물들이 냄새로 영역을 구분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는 우리에게 물질만능주의와 부의 계급화 같은 사회문제를 남겨줬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것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부의 계층화문제, 물질만능주의, 인본주의의 쇠퇴, 정신건강의 위기 등은 인류 공통의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생이냐 공생이냐, 지금은 이것이 문제로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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