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놈 자’와 ‘사람 자’

입력 : 2020-02-19 00:00


얼마 전 가족과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일이다. 텔레비전 종합편성 채널에 나와 세상만사를 아는 척하는 사람이 못마땅하여, 그를 가리키며 “저자”라고 지칭한 후, 여기서 자(者)는 ‘놈 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가 “아빠는 ‘사람 자’를 ‘놈 자’라고 한다”라며 이의제기를 했다. 교과서에는 분명히 ‘사람 자’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학교 다닐 때는 ‘놈 자’였다고 말한 후 ‘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래 ‘놈’이라는 우리말은 ‘사람을 낮잡는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을 일컫는 단어였다. 이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제 뜨들 시러 펴디 ??할 노미 하니라(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라는 표현이 입증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의 용례를 갖게 됐다.

‘국어사전’은 명사 ‘자’를 ‘어떤 사람을 조금 얕잡거나 예사롭게 지칭하는 말’이라 풀이한다. 이자·그자·저자에 쓰인 ‘자’의 뜻이다. 또한 접미사 ‘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람’ ‘어느 방면에 능통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연구자·과학자·학자·저자·필자·기자·노동자·근로자·생산자·소비자·애국자·선구자·정복자·승자·패자·당선자 등의 용례가 그것이다. 접미사로 쓰인 ‘자’는 낮잡거나 얕잡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2007년 12월19일 치렀던 제17대 대통령선거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의 요구로 ‘당선자’ 대신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제2항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를 규정하고 있고, ‘공직선거법’ 제187조부터 제194조까지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당선인’을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의 전신인 ‘공직선거 및 선거 부정방지법(1994년 제정)’도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서는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 당선자’ 또는 ‘대통령 당선인’ 중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표현하는 게 타당할까? 법률 자구(字句) 그대로 풀이하면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대통령 말고는 누구도 ‘당선자’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옳은 일일까? 오는 4·15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후, 언론에서는 또다시 ‘사람 자(者)’와 ‘사람 인(人)’ 표기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이 발생할 게 확실하다. ‘공직선거법’에서 ‘당선인’이라 정하였으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기관 등에서는 당연히 ‘당선인’으로 일컬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이나 시민사회에서는 ‘당선자’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시비를 걸면, 당선자의 ‘자’는 접미사로 비하의 뜻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에서 대통령 ‘당선자’를 규정한 용어를 빌려와 ‘국회의원 당선인’에게 적용해 높여 부른 게 뭐가 문제냐고 되물을 일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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