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옹고집전’에 4차산업혁명 답 있네

입력 : 2020-01-15 00:00

옛날 옹진골 옹당촌에 옹고집이란 노인이 살았는데 고집이 세고 심성이 고약했다. 팔순 넘은 노모에게 불효하고 부자인데도 이웃에게 인색하며 갖은 심술을 부리면서 사는 게 일상이었다. 이 소식이 널리 퍼져나가자 도승이 옹고집을 다스리기 위해 그와 똑같은 인물을 만들어 그의 집으로 보내며 주인 행세를 하게 했다.

누구도 진짜 옹고집인 ‘진옹’과 가짜 옹고집인 ‘가옹’을 분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 부인조차 진옹과 가옹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관청에 진위를 가려달라고 소송을 한다. 관청에서는 가옹을 진짜로 판결하고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쳐서 내쫓는다. 졸지에 집과 재산·처자까지 빼앗긴 옹고집은 땅을 치고 원통해하지만 아무도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다. 진옹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심술과 악행 때문에 벌어진 것임을 깨닫고 개과천선한다. 이후 깊은 산속에서 도인을 만나 그가 처방해준 대로 했더니 가짜 옹고집은 사라진다. 그 후부터 옹고집은 노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이는 연대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고전소설 <옹고집전>의 내용이다. 1750년 간행된 필사본이 있으니 훨씬 이전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략 따져봐도 300년 이전에 나온 작품인데, 요즘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현상과 기술, 유용한 대처법들이 골고루 들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옹고집전>엔 복제인간 이야기가 나온다. 겉모습만 닮은 게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와 지식까지도 똑같은 인간복제를 상상한 것이다. 오늘날 첨단 바이오산업과 뇌과학은 이런 상상력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VR)의 구현이 묘사돼 있다. 오늘날 증강현실(AR)·VR 기술은 산업을 넘어 일상생활까지 파고들고 있다. <옹고집전>엔 현실계와 가상계를 넘나드는 상황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또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는 세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진위가 뒤엉킨 현상을 예고하는 듯하다.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옹고집이란 무엇인가.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를 말한다. 남의 말을 안 들으니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없고 균형감을 유지할 수도 없다. 모든 사달은 소통을 막는 옹고집에서 연유한 것이다. 독단·독식은 반드시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옹고집은 떵떵거리고 사는 부자이면서도 집안 일꾼들이나 이웃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고 툭하면 갑질이다. 나눔이 없으니 상생도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해결책이란 점을 배울 수 있다. 주인공의 삶은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닫고 반성하고 뉘우치면서 재탄생하게 된다. 분노와 증오심이 들끓고 서로를 비난하는 현대인들에게 궁극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같다. 새해 벽두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신년 구상을 다듬다가 <옹고집전>에서 무한한 상상력과 가상현실을 접하며 의미 있는 답을 찾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첫번째 과제는 바로 ‘소통’과 ‘개과천선’이로구나.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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