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뼈대가 무너지는 사회

입력 : 2020-01-08 00:00 수정 : 2020-01-08 23:37

차를 몰다보면 안전운전이라는 게 나만 잘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전혀 그럴 곳이 아닌데도 난데없이 역주행하거나 음주운전하는 차량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사고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마주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고 제 길을 가주고, 술 취한 행인이 비틀거리기는 해도 느닷없이 차도로 뛰어들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오늘도 비교적 무사히 도로를 누비고 다니는 중이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도로에 나름의 규칙이 있고, 나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이것을 지키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도, 처지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역시 느슨하나마 사람은 이래야 하고, 이 정도는 지켜야 하고, 또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특히 서로 누군지 대충 알고 인간관계로 얽혀 있어 일탈행위가 있을 때 직간접으로 압력이나 제재를 가하는 것이 가능한 작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현대에서 사회라는 것이 실감을 가지려면 나의 삶이 얼굴 모르는 사람과 사람 아닌 뭇 존재들에게까지도 빚지고 서로 의존하는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서로 나누고 돌보고 함께 이야기해 결정하고 집행하는 실천들을 일부러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단위로 봐도 한나라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태어나보니 무국적으로 살 수 없게 돼 있는 체제라 얻어걸린 대로 살자거나,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헬조선’을 견디는 삶이 아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큰 규모의 사회란 생각과 처지가 다른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것이라 국가단위의 문제는 개인단위의 문제보다도 쉽지 않다. 하물며 이 나라에서 이 정도는 지켜진다는 감각, 그리고 그것이 서로 공유되는 느낌을 쪽박 깨듯 밟아 없애면서는 함께 살아가는 길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게 볼 때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사회적 합의에 대한 말만 여기저기서 들려올 뿐 실제로 이 정도는 지켜져야 한다는 합의의 뼈대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난 연말 과거사 관련 법안이 겨우 통과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법 조항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법망을 피해가는 모습들이 계속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진영화된 논란 속에서, 어느 정도의 비위가 있으면 공직을 맡을 수 없는지, 어떤 일을 하면 처벌을 받는 건지 그 기준도 모호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어차피 법이 모든 정의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한해 20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겨우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은 정작 김용균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힘 있는 자는 법을 비켜가고, 그 법은 열악한 삶의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무력감이 퍼져간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실감이 사라져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뼈대가 무너지는 일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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