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따블’의 추억

입력 : 2019-12-04 00:00


한국에서 늦은 밤 승차거부하는 택시를 잡아탈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수록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자 단단한 바위 문이 스르르 열린 것처럼, “따블(Double·2배)!”을 외치면 핑계를 대며 승차를 거부하던 택시운전사의 태도가 돌변한다.

수년 전 국내 한 도시에서 열렸던 국제행사를 참관하려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아이와 함께 1박2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이가 간절히 원했고 아내도 ‘부자간 추억’을 쌓으라 권해 둘만 떠난 여행이었다. 새벽에 기차를 타고 그 도시로 이동해 성인 5만3000원, 어린이 3만원을 주고 ‘2일 입장권’을 샀다. 전시장 하나 관람하는 데 평균 2시간 정도 줄을 서야만 했다. 그날따라 주최 측에서 그 도시 주민들에게 무료입장을 허용해 1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린 데다, 사람들의 새치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분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전시와 공연을 열심히 관람했다. ‘빛의 예술’이라 알려진 야간 분수쇼에는 낮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다. 수많은 사람이 귀가할 경우 교통편을 찾기 어려울 게 확실해 아이에게 중간에 “돌아가자”고 권했으나 “끝까지 보고 싶다”고 해 그렇게 했다. 예측대로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큰 난관에 부닥쳤다.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서 한시간을 기다렸으나 버스 탑승 차례는 한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이 줄에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안내자에게 물으니 “최소 두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줄 서는 것을 포기하고 30분을 걸어 나와 시내 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 시도했다. 빈 택시가 보이자 나는 반기며 손을 번쩍 쳐들었지만 택시운전사는 못 본 척 그냥 지나갔다. 그렇게 40분간 여러 택시를 그냥 보낸 후 나는 아이에게는 들려주기 싫었던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낯선 도시라 택시 외 다른 교통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심한 피로감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택시 안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숙소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내게 “따블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의미를 설명하면서 한국 사회의 치부를 아이에게 보여준 것이 못내 창피했다. 우리 둘 다 이틀간 좋은 구경과 맛있는 음식을 즐겼지만 그 일로 기분은 계속 찝찝했다.

‘새치기’와 ‘택시 승차거부’는 과거의 일이 됐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에서 새치기가 사라졌다고 믿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매주 금요일 밤 12시 이후 전국 주요 도시의 중심지 거리에는 집에 가려는 사람들의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 ‘따블’은 추억의 영역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 때부터 익숙한 ‘마법의 주문’을 한국인은 급할 때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세대를 건너 유유히 전승되는 한국문화의 한 자락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특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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