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분쟁서 승리하려면 충동 누르기부터

입력 : 2019-06-12 00:00


약 800년 전인 1215년 6월15일 영국 존(John)왕은 런던 근교의 러니미드 평원에서 귀족과 사제들에 둘러싸여 일촉즉발의 폐위 위기에 직면했다. 왕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신하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존왕은 왕위를 유지하고자 자신의 권력행사를 법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대헌장(大憲章), 즉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문서에 서명했다. 왕의 충동적인 권력행사를 제한하는 법의 지배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이곳을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지(The Birthplace of Modern Democracy)’라고 불러왔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회항 사건’이나 유명 피자체인 회장의 경비원 폭행사건에서 보듯이 아무리 기업의 오너라고 해도 충동적인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면 본인은 물론 기업까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개인간의 분쟁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터무니없이 트집을 잡거나 마땅히 이행해야 할 약속을 깨뜨리면 우선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감정에 따른 행동은 대부분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이 커 주의가 필요하다. 법치주의는 모든 분쟁에서 충동에 따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고 절차로 해결하기를 요구한다.

충동을 누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분쟁을 처리하고 궁극에는 당사자가 아닌 법이 정한 심판자가 잘잘못을 가린다는 의미다. 화가 난다고 해서 폭언과 욕설을 한다거나 흥분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정당한 권리가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협박이나 폭행죄의 책임을 지게 된다. 상대방이 감정을 자극하고 시비를 유발할 때도 거기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분쟁이 시작되면 무엇보다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분쟁해결을 위해 내가 하는 모든 시도와 상대의 반응을 기록하고 필요하면 녹음도 해야 한다. 상대의 부당함을 따질 때도 미리 메모로 작성한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말투나 어조에 격한 감정이나 흥분이 들어가면 불리해질 수 있다. 굳이 법률용어가 아니더라도 상식에 따라 계약 내용을 근거로 무엇을 위반했고 왜 부당한 것인지를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최종 판단은 법의 몫이다.

상대에 대해서 ‘거짓말쟁이’ ‘양심이 없다’와 같은 주관적인 평가나 비난은 분쟁을 악화시킬 뿐이다. 흥분하게 되면 정작 챙겨야 할 유리한 사실이나 증거를 놓치게 된다. 분통이 터져 화병이 날 정도라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들판에 가서 큰소리를 지르더라도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서 재판관 포샤는 분노에 가득 찬 샤일록이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로부터 살 1파운드를 위약금으로 잘라가려는 위기상황에서 “살은 베어가되 피는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명판결로 반전을 가져왔다. 포샤는 “사람의 머리는 혈기를 다스리는 법률을 만들지만 분노(Hot temper)는 냉정한 법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버린다”고 말했다. 법률은 냉정해서 뜨거운 분노를 싫어하고 차가운 이성의 손을 들어준다.

소병철 (법무연수원·순천대 석좌교수,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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