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68)목탁

입력 : 202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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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 좋아 밥상·술상 만드는 인중 

꽃살문 작업하고 받은 노스님 답례가 …

 

다섯살 인중이는 남달랐다. 꾀가 똑똑 흘렀다. 제 어미 손을 잡고 장에 갔다 오다가 길섶에 있는 친척집에 들렀다. 마침 그 집에서는 우물가에서 앵두를 따고 있었다. 앵두나무 세그루에서 딴 앵두를 장에 내다 팔아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탰다. 소쿠리에 담겨 있는 새빨간 앵두가 초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자 인중의 입속에 침이 고였다. 친척 아주머니가 인중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움큼 쥐어 가거라” 하자 인중이는 부끄러운 듯 제 어미 치마를 잡고 뒤로 숨었다. “인중이가 체면을 차리네” 하더니 아주머니가 한움큼 쥐어 인중이 조끼 주머니에 넣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물었다. “그 집 아지매가 너보고 앵두 한움큼 쥐어 가라 할 때 왜 내 치마를 잡고 숨었어?” “그 집 아주머니 손이 내 손보다 훨씬 크잖아. 내 손으로 쥐었으면 한주머니도 못 채웠을 거야!” 인중이 어미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인중이는 어릴 적부터 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았고, 돈벌이에 눈을 떴다. 일곱살 때는 엿장수, 열살 때는 야바위 바람잡이, 열두살 때는 소매치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과 밤중에 수박서리 가서는 개울가 풀숲에 몰래 한두개 감춰놓았다가 이튿날 대낮에 혼자 와서 수박을 끄집어내 주막 주위를 서성이는 들병이들에게 싸게 팔았다. 열대여섯살이 되어서는 밤에 훔쳐두었던 수박을 주고 들병이 치마를 벗기기도 했다.

인중이는 손재주가 좋아 농방(가구점의 강원도 방언)에 들어갔다. 농도 만들고 술상, 밥상도 만드는 소목공방에서 만 삼년을 배우고 나자 더 배울 게 없어 자기 집 헛간에 목공방을 차렸다. 눈썰미가 있고 솜씨도 좋은 데다 값도 싸 몇달 지나지 않아 소목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뚝딱뚝딱 끌질을 하고 있는데 노스님이 찾아왔다. 가끔씩 탁발을 하러 와 낯설지는 않았다. “인중이 너, 나 좀 따라와야 쓰것다. 연장을 몽땅 들고 가자.” 인중이 미간을 찌푸리고 “스님 공짜로 일 시키실 생각 마십시오. 이래봬도 소인 일당이 비쌉니다요.”

노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걱정 말거라” 하자 인중이는 대패며 톱이며 끌이며 아교로 한짐을 챙겨 등에 졌다. 망종이 지난 햇살은 따가워 금방 땀이 흘렀다. 산허리를 돌아 주막이 나타나자 노스님이 “우리 곡차 한잔하고 가자”고 말했다.

인중이도 목이 마르던 참이라 주막으로 들어가 평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지난 석탄일에 재가불자(在家佛者)들이 법당에 몰려 나가 문이 다 떨어져 나갔네.” 노스님이 곡차 한잔을 들이켜더니 “그 문이 어디 보통 문인가. 볼 때마다 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단청꽃살문이 박살이 났지 뭔가” 하며 한숨 쉬었다. 노스님이 먼 산을 바라보더니 “그 꽃살문이 꿈속에도 나타나고 하늘을 쳐다봐도 아른거리네. 나를 살려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하고 말했다.

주막을 나와 산을 오르는 인중의 가슴은 뿌듯했다. ‘스님은 내 솜씨를 알아주는구나.’ 주지스님이 인중과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절 마당에 들어서자 스님들과 행자들이 반갑게 맞았다.

인중은 요사채 방 하나에 단봇짐을 풀고 이튿날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법당 뒤에 터를 잡고 삼년간 건조시켜놓은 물푸레나무를 톱질하기 시작했다. 꽃살 문양을 하나하나 조각하는 작업은 보통 고된 작업이 아니다. 가끔씩 노스님도 와서 끌로 꽃살을 조각하는데 많이 해본 솜씨다.

스무하루 만에 꽃살 문양 문짝을 완성해 삼일을 그늘에 말렸다가 단청했다. 문짝을 다는 날은 법회를 열어 축하했다. 노스님이 인중에게 돌배나무로 만든 목탁을 줬다. “스님, 하산하렵니다. 할 일도 많고요.” 노스님이 인중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너는 우리 고을 최고의 소목장이다. 앞으로 다른 절 종단 불사도 도와주려무나.”

“그런데 스무나흘 동안 문짝에 매달린 일당은 왜 계산해주지 않는 거야?” 인중이 연장 보따리를 싸다 말고 그동안 친해진 행자에게 볼멘소리를 하자 “목탁을 드렸잖아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목탁이 무슨 소용이야! 돈을 줘요. 돈을!” 인중이 문을 열고 숲속으로 ‘휭∼’ 목탁을 던져버렸다. “안돼요. 안돼.” 행자가 문을 열어 초롱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울상이 되어 반쪽으로 깨진 목탁을 들고 왔다. “우리 큰스님이 삼년에 하나씩 만들어내는 목탁은 천하명품으로 값을 따질 수 없어요. 그 청아한 목탁 소리는 십리 밖까지 들려요. 아이고∼ 이걸 어쩌나.” 스님 목탁을 사겠다고 대기하는 스님과 부자 재가불자들이 열사람이 넘는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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