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57)호박씨

입력 : 2021-03-19 00:00

01010101501.20210319.001301177.02.jpg

마을 두레 후임 행수 선출하기 위해

호박씨·토분 나눠주고 키워오라는데…

 

박토심은 칠전팔기, 여덟번 만에 대과에 급제해 청운의 꿈을 안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며 두팔을 걷어붙이고 육모방망이를 잡고 마패를 허리에 찼다. 암행어사가 된 것이다.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며 옥이 미어터져라 갇힌 죄수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자기는 죄가 없다며 땅을 치고 울부짖는데 사또의 설명은 딴판이다. 소도둑은 자기는 소를 훔친 적이 없는데 소가 따라왔다고 우기고, 장터에서 흑염소를 한마리 사서 집으로 가다가 소나기를 맞았더니 먹물이 씻겨내려 흰 염소가 되었다 하고….

아랫것들만 거짓말에 도둑질에 사기꾼들이 아니다. 어느 부자는 머슴에게 시집에서 쫓겨온 딸애와 삼년 후 혼례식을 올려주겠다 속이고 세경 한푼 안 주고 일을 시켜먹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또는 사또대로 나라의 곳간을 축내고 백성들을 등쳐먹었다. 정직하고 가난한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다가 배가 등에 붙어 황천길로 가고, 어린 딸을 입 하나 덜겠다고 민며느리로 보냈다.

박토심은 절망했다. 조정은 굶어죽는 백성들을 강 건너 불 보듯 한 채 사색당파로 서로 피만 튀겼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치국경세던가!? 박토심은 병석에 있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사직서를 던졌다.

토심은 고향에서 유유자적 낭인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실학(實學)을 접해 정약용의 <목민심서(收民心書)>에 심취하게 되었다. 특히 12편 중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극빈자들을 살려내는 진황(賑荒)편에 집중했다. 책을 읽고 고개만 끄덕이면 실학이 아니다.

원래 토심네 집안은 대대로 천석꾼 부자로 우선 동네 사람들과 두레를 만들었다. 토심은 모든 논밭을 합쳐 지분을 나눠줬다. 자기 재산은 반으로 줄고 소작농들은 모두 지주가 되었다. 두레가 조합이 되어 모두가 열심히 일했다. 조합 행수(行首)가 된 토심은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러분, 농사는 정직합니다. 땀 흘린 만큼 거둬들입니다. 사람과 곡식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도 정직이 생명입니다. 정직이 있어야 서로 믿고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모든 조합원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행수인 토심은 청나라에서 들여온 영농기술서를 탐독하고 끊임없이 연구했다.

제물포에서 무역선을 타고 중국에 가서 알이 굵은 콩을 바짓가랑이 속에 넣어 오고, 일본에 가서 다수확 볍씨를 몰래 가져왔다.

집에서 한두마리 키우던 돼지는 사육우리를 여러 동으로 만들어 마릿수를 늘려 팔고, 돼지똥은 퇴비와 섞어 발효했다. 양계장을 만들어 달걀을 팔고 닭똥은 발효시켜 돼지똥과 함께 거름으로 쓰자 콩도 보리도 성큼성큼 자라고 벼도 쑥쑥 자랐다.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이 되면 초립동은 치부책을 정리하고 황 처사는 영농기술서를 파고들고 행수 토심과 운영위원들은 사업구상을 했다.

조합에 돈이 쌓여가는데 호사다마, 걱정거리가 생겼다. 조정에서 토심을 불러올린 것이다. 임금이 내려보낸 승지가 멀쩡하게 마실 다니는 토심 어미를 두눈으로 직접 봤으니 거절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박토심은 승지에게 부탁해 신변정리를 위해 한달간의 시간을 얻었다. 박토심은 낮이고 밤이고 자신이 없어도 영농조합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조합 행수 자리를 누구에게 물려주느냐에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행수 박토심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백여덟명의 조합원이 술렁거렸다.

박토심이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토분 하나와 호박씨 한알씩을 나눠주며 “한달 후 이 토분을 들고 오시오. 호박씨가 발아해서 모종이 얼마나 컸는지 보겠소”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다.

무덤덤한 황 처사도 집으로 돌아가 토분에 텃밭 흙을 퍼 담아 행수로부터 받은 호박씨 한알을 정성스럽게 심었다. 우물에서 정화수 떠오듯이 물을 길어와 사발만 한 토분에 물을 주려다가 “아차” 하며 쌀뜨물을 미지근하게 데워 토분에 줬다. 곡우가 코앞에 다가올 때라 낮에는 따뜻한 햇살에 훈풍이 불어와 부지깽이를 땅에 꽂아도 싹이 날 것 같은 봄날이지만, 밤이 되면 아직도 찬 이슬이 내려 토분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방에 들여놓았다.

황 처사가 조합으로 출근하고 나면 그 부인이 토분을 처마 밑으로, 장독대 앞으로, 햇볕 따라 옮겼다. 떡잎이 올라오지 않았다. 보름이 지났는데!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조합원들은 호박씨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스무날이 지나고 각일각 한달이 되어도 호박씨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날이 왔다. 모두가 호박 모종 떡잎이 올라온 토분을 들고왔지만 황 처사는 흙만 담긴 토분을 들고 왔다. 박토심이 의관을 차려입고 승지와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 말에서 내려 조합원들의 토분을 죽 둘러보고 “이 영농조합의 행수는 황 처사요” 하고 큰소리로 후임 행수를 지명하고는 말에 올라 떠나갔다.

호박씨는 삶은 것이었다.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