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밥 한끼 함께 할까요?

입력 : 2020-04-06 00:00 수정 : 2020-04-06 23:46


벚꽃 필 무렵이면 언젠가 경남 통영에서 누군가와 먹은 도다리쑥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좋은 사람과 먹는 것은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누릴 권리 중 하나일 테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염병의 대유행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미덕인 시절에 미식여행은 사회적 비난을 살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이은영


우리는 영양과 맛, 식감을 따지며 무엇을 먹을까를 고른다. 우리는 곡물·육류·해물·채소·견과류는 물론이고 설탕·소금·기름·후추 따위를 먹는다. 음식은 원기를 북돋우고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런 맥락에서 ‘먹다’와 ‘살다’라는 동사는 하나다. 이 말은 먹어야 산다는 점에서 한점의 의혹도 없는 진리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중요한 이유는 그에 따라 우리 삶이 다른 형태로 빚어지는 까닭이다.

알다시피 사람은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바깥의 것을 먹고 자양분을 취한다. 우리는 실로 다양한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동물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굶주림은 사라졌다. 우리 시대의 불행은 음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음식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러넘쳐서 우리를 괴롭힌다. 속이 텅 빈 풍요다”(비 윌슨, <식사에 대한 생각>). 어디에나 음식은 차고 넘치건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먹는 음식의 질은 더 보잘 것없어졌다.

먹을 게 많아졌다고 더 행복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행복감이 더 커진다는 믿음은 잘못이다. 식문화는 난잡해지고, 우리는 해로운 음식을 더 자주 먹는다. 나쁜 음식을 삼키며 불행을 실감하는 것은 풍요의 시대가 낳은 역설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할 때 칼이 도마 위에서 내던 소리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드물다. 그건 배고픔을 즐거운 기대로 바꾸는 마술이었다! 이젠 어머니의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쓸쓸한 자각과 함께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울 때, 나는 사소하게 불행해진다.

누군가와 밥 한끼를 함께 나누는 일은 사회적 관계를 두텁게 만드는 중요한 의례이면서, 쓸쓸함과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다. 하얀 벚꽃 분분한 봄날 저녁, 누군가 “밥 한끼 함께 할까요?”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갑갑한 탓도 있지만, 그것이 소소하게 행복한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탓이 더 크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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