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빗방울 하나

입력 : 2019-10-05 13:52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에 문득 놀라 주위를 둘러볼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해 저물녘 들길같이 일상이 선명해진다.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화단 풀 뽑고, 땅에 떨어진 돌멩이 주워 담장 위에 얹고, 시 쓰고. 그 다음날 또 다른 시 쓰고 그러다가 어떤 일로 열 받고 낙담 뒤에 낙심하고, 그 다음날은 생각지도 않은 일로 즐겁다.

일러스트=이은영


삶이 느닷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덧없다는 것이 새로울 때, 그 순간이 문득 깨진 유리창 파편들처럼 허공으로 찬란하게 흩어진다. 허공을 가진 자는 자유롭다.


산골 강가 작은 마을에 사는 나는 심심하게 산다. 너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달팽이·참새·방충망 사이를 빠져나온 날파리, 가문 땅을 뚫고 나온 지렁이·개미·거미·메뚜기, 연못으로 뛰어드는 어린 개구리, 풀잎 사이로 날아다니는 흰나비, 바람을 몰고 가는 바람이 보인다.


바람을 따라가보라. 흰나비를 따라가보라. 해석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의 긴장이 절정의 나뭇가지 위에 눈이 부시다. 마을 뒷산 당산나무에 찾아와 남의 집을 빼앗느라고 마을을 시끄럽게 하는 파랑새보다 나는 어디 가지 않고 내 곁에서 사는 참새가 좋다. 나는 참새들이 걷지 않고 통통통 뛰어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 있어서 혼자 웃는다. 참새는 왜 걷지 않고 뛸까.


김치를 평생 먹고 살다니, 실은 그것이 그렇게 새롭다. 참새 밥통을 생각하는 일, 떨어진 나뭇잎을 뒤집어보는 일, 일흔두해를 바라보고 산 느티나무를 새로 보는 일, 하루를 지내온 그 어느 지점의 강가에 앉아 나는 하루의 답을 버린다.


나는 달이 앞산에 떠올라서 강을 건너, 느티나무를 넘고 고추·상추·가지·오이 밭을 지나, 휘어진 옥수수잎 위에 빛을 떨구어주고 우리 지붕을 넘어, 서쪽 꾀꼬리가 우는 밤나무 숲으로 가는, 그 행로의 순서와 차례가 한치의 오차 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그날은 없다. 실은 어느 날이 있었고, 지금이 있다. 일상을 존중하라. 여기까지 쓰고 있을 때, 비다. 나의 고요가 고개를 든다. 비가 고요를 데리고 내게 왔다. 바로 앉아 비를 본다. 자세를 고치고 바로 앉아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무슨 짓을 해야 하는가. 빗방울 하나보다 못한 짓을 나는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사람이 할 짓인지.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다. 국민은 절대 나라를, 우리가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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