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입력 : 2019-09-11 00:00 수정 : 2019-09-12 23:16


열탕 지옥 같던 여름이 끝나자 가을은 당일배송 택배처럼 빠르게 도착한다. 숲속 활엽수의 잎에 고운 단풍이 들고, 울안 대추나무 가지마다 알알이 달린 대추알도 제법 굵어졌다. 이맘때면 나도 모르게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시인 김용호가 쓴 가사에 작곡가 김동진이 곡을 붙여 만든 우리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다.

일러스트=이은영

청년 시절엔 자주 먼 곳을 꿈꾸었다. 내 상상이 가닿은 먼 곳은 마추픽추와 잉카 유적이 있는 칠레나 아프리카의 케냐 같은 이국(異國)들, 붉은 바위가 아름답다는 미국 서부의 산타페, 지중해에 흩어진 섬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국민작가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는 크레타섬 등등이다. 그 먼 곳들을 물들이는 색은 단연코 찬란하고 아름다운 파란색이다. 푸름은 동경과 그리움의 색이다. “먼 곳의 그 색은 감정의 색이고, 고독의 색이자 욕망의 색이고, 이곳에서 바라본 저곳의 색이고, 내가 있지 않은 장소의 색이다. 그리고 내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의 색이다(리베카 솔닛).”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이 푸른 것은 그곳들이 내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낯선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그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에는 지금의 자신을 바꿔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숨어 있다.

우리 삶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저 너머의 세계 사이에 걸쳐져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 갈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두 세계 사이에는 여러 장애물들이 놓여 우리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삶이 곤핍할 때 가슴에 품은 먼 곳에 대한 동경은 더 아득해진다. 현실이 비루할수록 그리움은 막무가내로 자라나고 부푼다. 그리움이 부재가 일으킨 감정이란 걸 모를 수가 없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부를 때 내 마음이 왜 자주 아득해졌는지를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다. “행복이 깃든 그곳”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만 여겼다. 저 구름 흘러가는 먼 곳을 꿈속에서라도 밟기를 바랐지만 그 꿈은 대학도 가지 못하고 취직도 하지 못한 청년에게는 도무지 가망이 없었다. 꿈이 가망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아득해진다. 아득함은 불가능성의 무뚝뚝함이 만든 얇게 펼쳐진 통증이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부르며 아득함에 빠진 것은 우리 삶이 품은 불가능성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체념에 젖어버렸기 때문인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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