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132)소년등과(少年登科)하면 생기는 문제

입력 : 2019-09-11 00:00

첫째, 타인을 얕잡아보기 쉬워 지적 자주해 주변에 적 늘어나

둘째, 과거 합격까지 고생 적어 공감능력·사람 보는 안목 떨어져

셋째, 한평생 운이 좋을 수 없어 초년과 달리 노년의 삶 고달파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는 경우를 ‘소년등과(少年登科)’라고 한다. 이렇게 빨리 출세를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첫째는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는 습관이 생긴다. ‘나는 전광석화인데 왜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머리가 아둔할까?’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지적을 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쉽게 한다. 지적을 많이 하다보면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다. 대인관계가 다 상처를 주는 관계로 변한다.

두번째 문제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상당히 문제가 된다.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설움도 겪지 않고 고생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고생하고 어떤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다.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배가 고픈지를 모른다. 다른 사람이 배가 고픈지 모르는 사람은 인간을 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이걸 요즈음 ‘공감능력’이라고 부른다.

공감능력은 자기가 겪어봐야 생긴다. 그냥 이론적으로는 배워지지 않는다. 자기가 배가 고프고, 자기가 피눈물도 흘려보고, 땀도 흘려봐야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세가지 액체를 바가지로 흘려봐야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세가지 액체란 피·땀·눈물을 가리킨다. 이걸 바가지로 흘려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가 생기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중에는 사업하는 과정에서 자살 시도를 2~3번씩 해본 사람이 많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을까, 수면제 먹고 죽을까, 아니면 자살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을까, 카페리 타고 일본 가다가 현해탄(대한해협)에서 심청이처럼 몸을 던져서 죽을까. 기업가들을 만나보니 매일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10년 전쯤 LG회장이었던 고(故) 구본무 회장과 곤지암 골프클럽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 양반이 양주를 혼자서 거의 반병 정도나 마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이 정도 술을 먹지 않으면 밤에 잠이 안 와. 기업 운영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오전에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가 여기에 다녀갔는데, 손정의는 자기가 당대에 망해 먹더라도 자기 손으로 일으킨 기업이니까 괜찮지. 근데 나는 선대에서 일으켜 가꿔온 기업을 내 대에 와서 망해 먹으면 무슨 낯으로 조상님들을 쳐다보나. 그러니 그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와.”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던 구본무도 이렇게 고민이 많았다. 하물며 벼락출세해서 소년등과한 사람은 인간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훈련이 부족하다. 필자는 45세 이전에 큰돈 번 사람은 이 돈을 말년까지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본다. 적어도 돈은 50세 넘어서 벌어야 자기 돈이 된다.

세번째로 소년등과를 위험하게 보는 이유는 인간의 운이 한평생 계속 좋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초반에 잘나가면 후반에는 반드시 풍파가 닥치게 돼 있다. 반대로 초년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후반부에 볕들 날이 반드시 온다. 이걸 주역에서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한다. 한번 밤이 왔다가 그다음에는 낮이 오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이야기다. 밤과 낮의 교대가 한번이라도 어그러뜨러진 경우가 있었는가.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평범하지만 매우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잠언이다. 역사상 큰 인물들은 반드시 전반부에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을 겪던지, 아니면 거의 고아와 같은 고통을 겪은 다음에 후반부에 가서 성취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 ‘고자장’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하고, 그 하는 바 모든 일이 뒤틀려서 안되게 한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 이 대목을 우리 선조들은 거의 외우고 다녔다. 젊어서 고생은 반드시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성인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어서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승승장구한 사람은 인생 후반부에 닥쳐서 그 밀린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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