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128)소설가와 칼럼니스트

입력 : 2019-08-19 00:00

둘 다 붓으로 먹고살지만 본질적 차이 짧고 긴 데 있어

칼럼가, 참깨 압축기 넣어 엑기스만 뽑는 ‘참기름장수’

소설가, 이야기를 엿가락 늘리듯 최대한 늘리는 ‘엿장수’와 같아
 


1980년대 초반. 대학 다닐 때 어떤 점쟁이 할머니를 찾아간 적이 있다. 하는 일마다 안 풀렸던 어떤 선배를 따라 전주의 어느 허름한 동네 골목길을 이리 꺾고 저리 꺾어서 그 점쟁이 할머니 집의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그스름하게 옻칠한 밥상 위에다가 엽전 8개를 던져서 점괘를 보는 방식이었다. 하도 엽전을 많이 던져서 그랬는지 그 밥상은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져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 상태였다. 그 벗겨진 옻칠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 안 풀려서 여기 와 점을 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그 선배의 점괘는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객으로 따라간 필자의 점괘를 장황하게 이야기 하는 게 아닌가! 그 요지는 ‘붓으로 먹고살겠다’는 것이었다. “학생은 붓으로 먹고살겠어. 붓도 아주 큰 붓이여. 큰 붓을 든 수염이 허연 노인이 등 뒤에 서 계시는구만. 나중에 잘되면 내 손자 좀 잘 봐줘.”

붓도 붓 나름이다. 그때는 그 할머니 점괘를 흘려들었다. 40대 초반부터 신문에 칼럼 쓰는 직업을 갖게 됐다. 칼럼 써서 먹고 사는 팔자가 됐으니 그때 그 할머니 말이 적중한 셈이다. 기왕에 붓으로 먹고살 것 같으면 소설 써서 먹고사는 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칼럼니스트보다는 소설가가 훨씬 폼도 나고 족보가 있는 직업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문파가 아닌가. 소설가는 2000년이 넘는 역사적 전통을 지닌 가(家)인 것이다. 칼럼은 여기에 비하면 역사적 전통이 짧은 100~200년이다. 칼럼은 하찮게 여기고 소설은 귀하게 여기는 ‘소귀(貴) 칼천(賤)’의 사고방식을 갖고 그동안 몇몇 소설가들을 만나봤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술밥을 먹어보니까 같은 붓이라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 소설은 모필(毛筆)이고 칼럼은 철필(鐵筆)이라는 차이점이다. 털로 만든 필과 쇠로 만든 필의 차이라고나 할까.

문필가가 나온다는 문필봉만 하더라도 그 끝자락이 바위로 뾰쪽하게 돼 있으면 예리한 논객이 나오고, 그 끝이 바위가 아닌 흙으로 덮여 있으면 문장가가 나온다. 그러나 예리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문필봉이 너무 예리한 모양새로 돼 있으면 직언·직필로 일관하다가 유배가거나 사약을 받는 수가 있다.

화가가 배출된다는 화필봉(畵筆峰)도 있다. 초상화를 잘 그렸던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1912~2005년) 화백은 본인 회고록에 “선대 묘를 화필봉에 써서 내가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써놓았다. 화필봉은 봉우리 끝이 약간 비스듬하거나 뉘어진 형태이다. 화가는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종이에 발라야 하니까 붓이 뉘어질 수밖에 없다. 화가가 유배 가는 수는 적다.

칼럼가와 소설가의 본질적 차이는 짧고 긴 데 있다고 본다. 칼럼가가 참기름 장수라고 한다면 소설가는 엿장수(?)인 셈이다. 칼럼은 신문 지면에 기껏해야 원고지 10매 안팎의 글을 쓴다. 이에 비해 소설가는 원고지 수백, 수천매 분량의 글을 쓴다. 호흡이 다르다. 칼럼이 단거리 선수라면 소설가는 마라톤 선수다. 소설가 조정래는 10권 이상의 대하소설을 3개나 썼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의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로 1만매 이상이다. 이건 마라톤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대로 칼럼가는 압축을 잘하는 게 능력이다. 간단하고 쉽게 쓰는 게 미덕이다. 칼럼의 첫 문장부터 단칼에 조지고 들어가야 한다. 잽을 던지면 안된다. 만나자마자 라이트훅을 던져야 한다. 이게 칼럼가의 문체다. 마치 시장에서 참깨를 압축기에다 넣고 프레스로 누르듯이, 압축해서 군더더기 다 빼고 남은 엑기스만 내놓아야 시장에서 팔린다. 서론은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해야 한다. 만연체로 나가면 밥 굶는다. 이야기하는 화법도 두괄식으로 변모해간다.

반면 소설가는 엿장수가 엿가락 늘리듯이 늘려야 한다. 그래야 원고지 매수를 채울 것 아닌가. 엿장수와 참기름장수가 조우하면 어떻게 되는가. 참기름장수가 자꾸만 엿장수 말을 중간에 자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론만 이야기하시오.” “당신은 왜 남의 말을 그렇게 자르고 그래!” 별로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고 본다. 소설가는 좀 내성적인 스타일이 많고, 칼럼가는 성질 급한 양인 체질이 맞는 것 같다. 둘 다 붓으로 먹고 산다는 점에서는 동업자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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