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오늘 노을이 예쁘다

입력 : 2019-08-12 00:00


새벽 마당에 나왔다. 어둠이 가고 있는 자리에 빛이 찾아오고 있다. 귀뚜라미가 운다. 걸음을 멈추고 귀뚜라미 울음 곁에 서 있었다. 이 폭염 속에서도 가을이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서재로 왔다. 어제 하던 대로 강쪽 창가에 가만히 누웠다.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쳐 지나간다. 느낌이다. 언젠가도 이런 바람을 살갗으로 느낀 적이 있었다.

일러스트=이은영


날이 샌다. 호반새가 호로롱 호로로롱 운다.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돌담을 타고 가는 담쟁이 넝쿨들이 가면 안되는 쪽으로 기어가고 있어서 방향을 잡아주었다. 큰형수님이 애호박 한덩이를 들고 집으로 오다가 나에게 건네주고 가는 손을 보았다. 작은 큰집 형님 집에 들러 아프신 형님과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아픈 얼굴에도 아침이 묻어 있다. 밖으로 나왔다. 당숙모가 땅에 앉아서 깨를 까불고 있다. 허리를 약간 다쳤단다.

아침이 다가오면서 날이 무더워진다. 작은 큰집 형수님이 옥수수 가져다 먹으란다. 뒤꼍 텃밭에 고추와 가지·옥수수를 심었는데, 들고양이들 때문에 고추와 가지는 못 먹고 옥수수만 한포기 자라 두개가 달렸다. 어제 꺾어 삶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송가인의 노래를 들었다. 오래전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른 ‘정말 좋았네’를 여러번 들었다. 힘차고 폭넓은 가락과 목청이 사람들의 마음을 끝까지 뽑아 올려 울린다.

송가인의 노래를 듣다가 그러면 이미자 노래와 비교하기로 하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들어보았다. 놀라웠다. ‘섬마을 선생님’도 찾아 들었다. 정말 놀라웠다. 노래를 이렇게들 잘하는구나. 식구 셋이 밥 먹다가 밥 먹는 것도 중단하고 두 가수의 노래에 감동하였다.

해 지자 어제와 다른 바람이 불었다. 자연은 반성도 틀림없다. 반성하지 않으면 고추도 붉어지지 않는다. 산책을 나갔다. 노을이 예쁘다. 정말 곱다. 파르스름한 조각달이 희미하게 떴다. 달이 저런 색을 가질 때도 있다고 셋이 달을 올려다보고 서서 감탄하였다. 슬픈 색이다.

걷다가 아내가 “벼가 팼다”고 크게 말했다. 벼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동쪽 하늘에 무지개가 희미하게 솟다가 푸른 하늘을 만나 끝을 맺지 못했다. 딸이 무지개를 올려다보고 오래 서 있다. 그쪽으로 태풍이 지나가면서 비를 뿌리나보다. 풀어지는 구름에 어둠이 찾아 들고 강에도 어둠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별일 없는 나의 하루가 이렇게 또 저물었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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