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봄날 편지

입력 : 2019-04-15 00:00


제가 사는 파주에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벚나무마다 흰 벚꽃이 만개해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직박구리 두어마리가 벚꽃나무 가지에 날아와 종일 꽃에 부리를 박고 꿀을 빠는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은 보온병에 커피를 채워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가고 싶을 만큼 화사합니다. 당신이 계신 곳에도 봄꽃은 벌써 지천이겠지요. 부디 이 봄날의 축복을 뼛속까지 만끽하시길 빕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요즘 내내 행복에 대한 상념에 빠져 지내는데요. 행복은 잉여가치가 아니라 필요가치인 게 분명해요. 제 결론은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여름과 겨울이 그렇듯이 둘은 한 자리에 양립할 수 없을 뿐이지요. 많은 이들이 불행을 회피한 결과로써 행복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불행을 회피하는 데 제 시간과 돈을 다 써버립니다. 정작 행복을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상태에 빠집니다.

젊은 시절엔 직장도 없이 백수로 떠돌았기에 삶이 누추했습니다. 가난이 불행의 유전인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때에도 깨달았지만 어쩐지 저는 몹시 불행했습니다. 가난이 내 꿈들을 꺾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세월 지나 돌이켜보니 가난으로 불행해질 수도 있지만 가난이 반드시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복어독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지만 최고의 요리사는 복어회의 풍미를 돋우기 위해 극미량의 독을 남긴답니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우울감이 곁들여져야 행복의 양감이 분명해집니다. 완벽한 행복이란 차라리 불행입니다. 행복을 실감하려고 일부러 우울해질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은 부족한 듯한 행복을 살펴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 움 돋는 작약이나 나날이 푸르러지는 버드나무조차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잦은 불운들에 당신이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쓴맛을 경험한 혀가 단맛의 달콤함에 더 예민해지는 법이지요. 혁명 직전에 기대와 희망이 부풀고, 혁명의 달콤함이 최대치에 이릅니다. 누군가는 불행하고,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행복은 그것을 향유하는 능력입니다. 꽃 피고 새 지저귀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저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디 마음의 눌린 데를 펴고 더 밝고 더 크게 웃으시길 빕니다.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더 행복해집니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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