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102)‘견마(牽馬)잡이’의 유래

입력 : 2019-02-11 00:00 수정 : 2019-02-11 10:18

만주족 연구한 소장학자 이훈,

말잡이 뜻인 만주어 ‘쿠툴러’가 조선에 들어와 ‘거덜’됐다 주장

상전 뒷배로 호가호위 일삼던 거덜들 행태서 허세 떤단 뜻의

‘거들먹거리다’라는 단어 파생
 


현재 쓰고 있는 한국말의 유래는 다양하다. 시루떡처럼 그 어원이 시대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쌓여 있다. 어느 한층이나 시대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영어가 섞이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한자도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라도지역의 사투리 상당수는 인도의 고대 언어인 ‘실담어’에서 유래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 옛날 고대에는 배를 타고 문명과 언어가 이동했으므로 남방의 해로를 따라 고대 언어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 어원 가운데는 만주족의 여진(女眞)과 청나라에서 유래한 말도 있다. 만주족을 연구한 소장학자가 쓴 <만주족 이야기>(이훈, 너머북스)를 읽다보니까 ‘말구종(驅從)’과 ‘쿠툴러(kutul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말의 ‘거들먹거리다’와 ‘거덜 내다’ 같은 말은 만주족이 쓰던 쿠툴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이훈의 주장이다. 쿠툴러는 말잡이, 또는 견마잡이라는 뜻이다. 만주족이 사용하던 쿠툴러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어라고 한다. 말을 많이 다루던 몽골에서는 말을 끄는 사람을 ‘쿠투치’라 불렀다고 한다. 몽골은 6~7세가 되면서부터 말을 다루기 시작하는 말의 나라이니 말을 다루는 직급이 세분화될 수밖에 없다. 쿠투치가 만주에 들어와 쿠툴러가 되었고, 이 쿠툴러가 청나라의 제국 언어가 되면서 조선에 들어와 ‘거덜’이 됐다는 것이다.

조선에도 말을 다루던 부서가 있었다. 조선에는 산이 많아 수레가 고개를 넘어 다니기 어려웠고, 말을 타고 공무를 전달했다. 역참(驛站)은 말을 보유하고 관리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한양으로 공문서를 전달할 때는 중간 중간의 역참에서 계속 말을 갈아타고 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역참 가운데 큰 규모였던 전북 삼례(參禮)에는 말이 죽으면 묻어주던 ‘말무덤’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순천쪽에서 올라오는 전라좌도와 목포쪽에서 올라오던 전라우도의 길이 합해지는 지점이 바로 삼례였고, 삼례는 2개의 국도에서 올라오는 파발마들이 집결하고 또 말을 갈아타는 터미널이었다. 당연히 말을 관리하는 일이 역참의 중요한 업무였다. 한양 정부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엔 말을 관리하는 종7품의 ‘견마배’라는 직책이 있었다. 이 견마배들을 거덜이라고 했다. 고위직이 길을 나설 때는 이 거덜이 말고삐를 잡고 앞에서 “물러서거라”를 외치면서 군기를 잡았다. 모시는 상전의 위세를 이용해 각종 이권에도 당연히 개입했다.

‘1513년(조선 중종 8년) 견마배가 소송인의 뇌물을 받고 관아에 소장(訴狀) 올리는 일을 중간에서 농단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거덜인 견마배의 직급과 신분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모시는 상전을 배경 삼아 호가호위를 일삼은 것이다. 그래서 이 거덜에서 허세를 부린다는 의미의 ‘거들먹거리다’는 말이 파생됐다. 또한 거덜은 거들먹거리며 어깨를 흔들었기 때문에 여기서 ‘흔들리다’는 의미가 파생됐다. ‘거덜마’는 ‘거덜이 끌거나 타는 말’을 뜻하기도 하고 ‘흔들거리는 말’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거덜의 ‘흔들리다’는 뜻에서 ‘살림이 흔들려서 파탄나다’는 의미의 ‘거덜나다’는 용어도 생겨났다.’(<만주족 이야기> 237쪽)

만주족은 여진족이다. 말을 타고 싸우던 민족이다. 따지고 보면 고구려의 후예라고 봐야 한다. 만주족의 누르하치가 이끌던 기마병은 당대 최강의 전사집단이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이 말을 끌고 가던 사람이 따로 있었다. 싸우는 전사(戰士)는 말에 타고, 고삐를 잡은 쿠툴러가 말을 끌고 가고, 밥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말먹이도 주었다. 만주 팔기병 1명이 보통 4~5명의 쿠툴러를 보유했다고 한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이 쿠툴러도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예비병력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투에서 이기면 약탈을 하게 되는데, 쿠툴러들이 있어야 약탈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규모 전투는 장기간에 걸쳐 치러졌고, 장기간일수록 군대의 육상 이동거리가 길었다. 전쟁 다음의 필수 코스가 약탈이었으므로 약탈을 하려면 이들 쿠툴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만주족은 전쟁이 일상화된 전투집단이었고, 이 전투집단의 노비가 쿠툴러였던 것이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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