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봄날 나들이

입력 : 2018-04-16 00:00


춘분을 기점으로 저 남쪽에서 날마다 새로운 꽃소식이 올라온다. 매화·산수유·벚꽃·영산홍 등. 시속 몇 ㎞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백두대간을 타고 북상하는 꽃소식과 함께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편다. 봄은 우리가 딴짓 하느라 바쁠 때도 최선을 다한다. 내 거처가 있는 북쪽 경기 파주에도 봄꽃이 번지는데, 어제 산책길에선 개나리꽃을 바라봤다. 개나리꽃 덤불은 노란 카레를 냄비째 뒤집어쓴 듯하다. 우리 동네에도 산수유꽃이 피고 목련나무에서 흰 꽃봉오리도 활짝 터졌다. 봄은 우리가 보탠 것이 없는데도 소년가장처럼 씩씩하게 당도한다.

“무슨 목적으로, 4월이여 너는 다시 돌아오는가? / 아름다움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 (중략) / 나의 목덜미에 닿는 햇살이 뜨겁다. / 흙냄새가 좋다. / 죽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 사람의 뇌는 땅속에서만 / 구더기에 먹히는 것이 아니다. / 인생은 그 자체가 / 무(無), / 빈 술잔, 주단 깔리지 않은 층계. /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 4월이 재잘거리며, 꽃 뿌리며 / 백치처럼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빈센트 밀레이는 ‘봄’에서 이렇게 노래했지만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온갖 생령들이 천지간에 퍼진 양기를 빨아들여 꿈틀대고 기지개를 켜는 4월은 마음을 화창하게 만든다. 작약이나 히아신스의 움이 땅거죽을 밀며 올라오고, 종달새는 푸른 대기에서 명랑하게 지저귀며 활강하고, 북방산개구리는 하천에서 밤새 울어대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도 돌 틈에서 기어 나온다. 봄은 이렇듯 뻗치고, 움트며, 노래하는 것들로 아연 활기를 띠는 것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건만 아프지 않고 기운생동(氣運生動) 하는 몸으로 맞는 이 봄은 늘 새롭다. 며칠 전 아침, 창밖 벚나무 가지마다 벚꽃이 만개한 게 눈에 들어왔다. 벚꽃 무더기가 뿜어내는 광도(光度)는 눈부신데, 햇빛은 심벌즈 소리로 울렸다. 나는 햇빛 아래 만개한 벚꽃을 보며 떡을 든 아이처럼 들떠서 백치처럼 웃는다. 전날만 해도 반쯤 벌어졌던 벚꽃이 하루 새 뜨거운 오븐 속 팝콘같이 활짝 벌어진 채 다닥다닥 매달렸다. 쉼 없이 수액을 퍼 올리는 벚나무는 가지 속에 품은 환한 꽃들을 밖으로 밀어내느라 얼마나 힘을 썼을까? 나는 다시 빈센트 밀레이의 시구절을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백송이 꽃을 만지되 / 한송이도 꺾지 않으리라.” 이 화창한 날에 집구석을 지키며 그림자처럼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주말에는 한라봉 하나, 김밥 한줄이라도 싸들고 가까운 심학산 봉우리에라도 소풍을 다녀와야겠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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