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62)최고의 풍류 유상곡수(流觴曲水)

입력 : 2018-04-16 00:00

구불구불 돌아가는 물에 술잔 띄워 주거니 받거니…경주 ‘포석정’ 대표적 유적

농암 이현보, 집 앞 분강서 퇴계·금계와 유상곡수 즐겨 영남가단 형성되는 계기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기쁨과 즐거움은 못 누리고 고생만 하면서 살고 있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시달린다. 돈을 지키기 위해 재판도 여러건 치른다. 없는 사람은 없어서 시달린다.

이런 근심과 걱정을 상쇄해줄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그 대안으로 ‘유상곡수(流觴曲水)’를 꼽고 싶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것이 유상곡수다. ‘상(觴)’은 술잔이란 뜻이다.

경북 경주 포석정(鮑石亭)이 유상곡수를 하던 장소다. 신라시대 유적지 가운데 최고는 이 포석정이 아닌가 싶다. 포석정은 인공으로 만든 시설이다. 평지에 50㎝ 깊이의 도랑을 파고 그 도랑에다가 돌을 대서 곡수거(曲水渠)를 만들었다. 곡수거에 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띄워서 돌릴 수 있었다. 이러한 인공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은 동아시아에서 포석정뿐이라고 한다.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고 한 사나이가 있었다. 말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어부가(漁父歌)를 부르며 신선처럼 살았던 농암(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년)다. 돈과 권력·명예보다 자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신선급이다. 바로 농암이 유상곡수를 즐겼다.

농암의 고향은 지금의 안동 도산서원 근처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해 계곡과 물이 어우러진,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풍경을 연출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이 낙동강 상류를 분강(汾江)이라고 불렀다. 중간중간에 바위들이 있고 물살도 적당히 있던 강이었다.

농암은 이 강가에 강각(江閣)이란 정자를 지어놓고 항상 분강의 모습을 감상했다. 날씨가 좋으면 지인들을 불러다가 배를 타고 나가 강 가운데에 있던 ‘자리바위(점석· 石)’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바위는 아마 대자리( )처럼 평평하게 생긴 바위였던 모양이다. 이 자리바위에서 유상곡수를 했다. 강물이 흘러오다가 자리바위에서 물길이 완만하게 두갈래로 갈라졌다고 한다. 강물이 자리바위 양옆으로 나눠지며 흘렀던 것이다. 위쪽에 앉은 사람이 술잔을 띄우면 아래쪽 사람에게 전달될 정도로 잔잔하면서도 느린 유속(流速)이었던 듯싶다. 중간에 술잔이 엎어지면 안될 것 아닌가! 이 광경에 대해 농암이 남긴 기록이 있다.

“조그만 배를 타고 귀먹바위(巖) 아래로부터 뱃줄을 풀어 천천히 흘러갔다… 이윽고 어두워져서 촛불을 밝히니, 자리바위는 강 한가운데 드리워 있고, 강물은 여기에서 좌우로 나누어져 흘렀다. 한줄기는 내가 앉은 자리 곁으로 흘렀고, 그 아래에는 퇴계가 앉아 있었다. 내가 취하여 흥이 올라오면 술잔에 술을 부어 나뭇가지로 만든 조그만 뗏목에 올려 띄우니, 퇴계가 아래쪽에서 웃으며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차례,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년)의 친구들이 이 정경을 보고 부러워했다(농암의 종손 이성원(李性源)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고통스럽게 합니까> 112쪽).”

농암의 집 앞을 흐르던 분강. 그 분강 가운데에는 조그만 배를 타고 닿는 자리바위가 있었고, 날씨 좋을 때에는 선비들이 자리바위 위아래에 앉아 즐겼다. 그 놀이가 유상곡수였다. 당시 농암이 81세, 퇴계는 47세, 금계는 31세였다. 퇴계와 금계는 사제지간이었다. 당시에는 이처럼 나이 차이가 있어도 함께 어울리며 풍류를 즐겼던 모양이다. 자리바위에서 이뤄졌던 당대 영남선비들의 유상곡수 모임을 모태로 영남가단(嶺南歌壇)이 형성됐다. 호남의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송강 정철로 이어지는 호남가단(湖南歌壇)과 쌍벽을 이루는 풍류전통이다.

물에는 인간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물 옆에서 살아야 한다. 머릿속에서 타는 불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물에는 바닷물이나 호수물도 있지만 완만하게 흐르는 강물을 우리 조상들은 좋아했다. 특히 강물 위에 넓적한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에 걸터앉아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바라보는 것이 좋다. 거기에서 술잔을 물에 띄워 마실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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