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61)경남 산청 필봉산(筆峰山)

입력 : 2018-04-09 00:00

붓끝처럼 뾰쪽하게 생긴 산을 풍수학에선 ‘문필봉’이라 불러 주변 동네서 학자·문장가 나와

교과서적인 문필봉 ‘필봉산’ 법무장관·부장판사 등 배출한 생초면에서 정면으로 보여
 


풍수학에서 말하는 문필봉(文筆峰)이 있다. 붓끝처럼 뾰쪽하게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또는 삼각형처럼 보이는 산이다. 이런 산이 동네 혹은 묏자리 앞에 있으면 동네 주민들이나 그 후손들 가운데에서 문필가가 나온다고 믿는다. 필자가 현장을 답사해봐도 문필봉이 보이는 동네에서는 거의 대부분 유명한 학자나 문장가가 배출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20년 전쯤 중국의 오지와 시골을 돌아다녔을 때다. 동네 앞에다 인공으로 문필탑(塔)을 조성해놓은 경우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저게 뭐냐?’고 현지 주민에게 물으니 ‘문필탑’이라고 대답했다. 문필봉이 없으니까 인공으로 굴뚝 같은 탑을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세워놓은 것이었다. 중국도 역시 우리처럼 풍수지리를 신봉해 이런 문필봉의 지령적(地靈的) 기능을 중시했다는 증거다. 꿩 대신 닭을 준비할 줄도 아는 게 지혜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무덤이면서 한편으로는 거대한 문필봉으로 조성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뾰쪽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야말로 완벽한 ‘인공 문필봉’에 해당한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뭔가 알긴 알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필자가 우리 산천을 답사 다닐 때 가장 눈여겨 보는 대목이 산의 모양이다. 수·화·목·금·토 5개의 모양 중에서도 목형(木形)인 문필봉을 가장 관심 있게 관찰한다. 문필봉이 멀리 보이면 나름대로 계산해서 그 봉우리의 가장 적당한 높이와 각도에서 보이는 동네나 지점을 찾아가보는 게 습관이다.

경남 산청의 필봉산(筆峰山)은 유명한 문필봉이다. 문필봉도 A·B·C급이 있는데, 산청 필봉산은 A급에 속한다. 왜 A급일까? 삼각형 모양이 제대로 됐기 때문이다. 기울어지거나 한쪽이 좀 먹히지도 않고 반듯하다. 뿐만 아니라 그 높이도 해발 848m로 우뚝하다. 누가 봐도 문필봉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만큼 교과서적으로 생겼다. 필자는 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멀리 이 필봉산을 볼 때마다 배가 부르고, 가슴이 뿌듯하고, 때로는 어떤 텔레파시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산청군 생초면(生草面)에 가면 이 필봉산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동네 앞에는 경호강이 흐른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생초면 어서리에는 생초초와 생초중·생초고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쭉 자리 잡고 있었다. 3개 학교가 이리저리 분산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 필봉산 때문이다. 어서리에서 보면 동네 앞으로 멀리 필봉산이 보인다. 필봉산이 보이는 가장 유리한 지점에 3개 학교를 배치한 셈이다.

법무장관을 지낸 김두희, 법무차관을 지낸 김상희가 이 동네 출신이다. 두 사람은 경주 김씨 집안인데 그 윗대로 올라가면 김신석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호남은행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부산상고를 나온 김신석은 회계업무에 아주 탁월했다.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한 전라도의 무송 현준호(玄俊鎬, 1889~1950년)가 호남은행을 창립하면서 김신석을 스카우트 했다. 현준호는 당시 인촌 김성수와 쌍벽을 이룰 만큼의 재벌이었고 일본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호남은행을 세웠던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부이기도 하다. 당시 김신석이 호남은행 목포지점장을 하면서 호남으로 옮겨와 살았다. 이때 낳은 딸이 김윤남이고, 김윤남의 딸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다. 거슬러 올라가면 홍라희의 외조부가 생초면 출신의 김신석인 것이다.

최근 베트남 축구를 한차원 끌어올리면서 ‘베트남의 히딩크’로 추앙받는 박항서 감독도 생초면 출신이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쌓여 있던 반한감정을 상당히 녹여주는 역할을 이번에 박 감독이 했다고 본다. 굉장히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현재 생초면장인 박춘서씨(60)는 박 감독도 자기와 같은 반남 박씨 서(緖)자 항렬이라고 했다. 또 박 면장은 동네 출신 인물들을 필자에게 여러명 알려줬다. 배준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성낙송 사법연수원장, 오동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유재열 예비역 육군대장, 한승의 전 육군사관학교장, 곽재성 전 해병대부사령관, 박찬수 목아박물관장이 생초면 출신이다. 교수들도 10여명 배출됐다. 필자는 이게 모두 필봉산 정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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