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이스털린의 역설, 얼마나 벌어야 행복한가?

입력 : 2020-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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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수준·행복도 동반 상승하다 일정시점 이후 행복도 증가 멈춰 

선진국·개도국 상관없이 적용 삶의 질↓· 상대적 박탈감 원인 

행복, 어느 수준되면 충족되지만 소득엔 무한대원리 작동도 영향

 

19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46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인들의 소득수준과 행복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일종의 역설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가 올라간다. 그런데 소득이 증가하는 일정 시점까지는 행복도 역시 올라가지만, 일정 시점을 넘어선 뒤로는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행복도가 더이상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 부른다.

이스털린 교수는 처음엔 미국인들 자료만으로 연구했으나 차츰 다른 선진국, 나아가 중진국(개도국), 그리고 전환국(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 국가) 등의 자료들을 갖고 분석했는데 그 결론은 대체로 일관성이 있었다. 나라를 불문하고 소득수준과 행복도는 일정 수준까지는 동반 상승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소득 증대에도 불구하고 행복도가 같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 역시 1960년에 비해 2020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300배 이상 증가했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행복도는 그리 높지 않고 오히려 지난 60년 동안 스트레스만 증가한 듯하다. 그래서 이스털린 교수 역시 자기 이론이 가장 잘 들어맞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옛날을 그리워하며 “그때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것 같아”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아마 십중팔구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실은 옛날로 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는 참으로 높다.

일례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느끼는 경쟁 압박, 대학생들의 취업 불안감, 직장인들의 고용 불안감이나 성과 압박,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느끼는 생계 불안, 사회 전반적으로 폭등하는 집값이나 땅값, 여전히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산업재해, 노인 빈곤도나 자살률 등은 한국 사회의 불행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스털린 교수는 ‘왜’ 그런 역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설명을 달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소득 증대에도 불구하고 행복도를 증가시키지 못할까? 나는 크게 세가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소득수준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면 행복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건강과 여유 ▲존중과 평등 ▲인정스러운 공동체 ▲조화로운 생태계 등 네 차원으로 정리된다. 즉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공동체가 해체되면, 또는 물과 공기가 악화하면 행복도는 오히려 추락한다. 오늘날 한국인은 예전보다 훨씬 잘살게 됐지만 날마다 미세먼지를 걱정해야 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으며 실직 위협이나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또 성차별도 심하고 학력 차별 역시 심하다. 자산 격차나 소득 격차는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무리 벌어도 행복해질 리가 있는가?

둘째, 이와 유사한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부단히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해질 것이다. 처음엔 절대적인 수준이 높아지면서 행복하더라도 갈수록 최고의 부자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행복감이 오히려 사라질 것이다.

셋째,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낀다면 이젠 그 수준만 잘 유지돼도 충분히 행복하기에 굳이 행복감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행복감에는 ‘충분함’의 원리가 작동하는 반면, 소득수준은 ‘무한대’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득은 무한대를 향해 부단히 증가할 수 있으나 행복도는 그 정도만 잘 유지돼도 인생 성공인 셈이다.

과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은 자신의 소득과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계실까? 부디 모든 분들이 내년에도 제각기 나름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 융합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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