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궐위의 시대’와 한국판 뉴딜

입력 : 2020-08-19 00:00

00289072_P_0.eps

감염병·기후변화·디지털화 등 가까운 미래 위력 나타날 텐데

분명한 ‘대안적 질서’ 못 갖춰

한국판 뉴딜, 변화 대응 청사진 환경보호·과학·일자리 개선에

더 많은 고민·노력 필요한 시기
 


6개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다가 길고 혹독한 수해까지 겪고보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제까지 우리가 살았던 세상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후변화의 위력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던 디지털 전환 역시 가까운 미래에 아주 강력한 형태로 우리 앞에 위력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변화의 위력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변화에 조응한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지는 못한 게 현실이다.

변화를 겪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분명한 대응의 질서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을 ‘궐위의 시대(인터레그넘·Interregnum)’라고 부를 수 있다. ‘궐위의 시대’는 로마법에 나오는 개념으로 최고 권력의 공백 상태를 말한다. 단지 정치적인 권력 공백의 의미를 넘어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한 지금 또한 궐위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때다. 정부가 7월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대안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청사진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이번 여름의 길고 긴 장마도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 화석연료의 과소비에 따른 탄소 배출과 이에 따른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한다. 대기는 지표로부터 수분을 빠르게 많이 빨아들이고 있고, 또한 이를 급하게 내뱉는 등 지구 내 물의 순환은 심각하게 교란돼 있다. 개발만을 추구한 인간이 야생을 침범하고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함에 따라 야생동물이 인간 가까이 내려오게 됐고, 야생동물과 생활하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에볼라, 지카에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의 서식지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문명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지적한다. 태양광·풍력·지열 발전으로 기존의 화석연료 의존형 에너지 방식을 전환하고,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 및 연료전지로 모빌리티의 동력을 바꾸는 것은 더는 피할 수 없는 다급한 일이다.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이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변화와 함께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이미 우리는 새로운 모습의 세상에 진입했다. 비대면산업이 확산하고, 가정·기업·교육·헬스케어·로봇·미디어 등 사회경제 모든 분야의 작동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데이터 경제,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이 직장과 가정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변화에 대비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인프라의 개선과 교육 훈련의 강화가 우리 사회와 개개인에게 절박한 과제로 부각됐다. 그 대책이 바로 한국판 뉴딜의 디지털 뉴딜이고 고용 및 사회안전망의 획기적인 확충이다.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구축할 때 중요한 것은 일자리 중심적 사고다. 일자리를 보완하고 새롭게 만드는 일자리가 소멸하는 일자리보다 많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판 뉴딜로 표현되는 변화에 대한 대응의 결과가 국민에게 고루 나눠질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탄소 제로(0) 사회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목적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추구할 때 기존 일자리를 최대한 보완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판 뉴딜 논의에서는 이러한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비대면산업으로 전환하는 사회를 지탱해주는 필수 노동자에 대한 관심도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택배·돌봄 노동자 그리고 농민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새벽 배송을 하다 경기 안산의 한 빌라 계단에서 숨진 ‘쿠팡맨’의 비극을 포함해 상반기에만 12명의 택배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필수적인 노동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김용기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