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경총 건의안과 농민 살림살이

입력 : 2020-05-13 00:00 수정 : 2020-05-13 23:53

국회에 낸 ‘40대 입법개선과제’ 법인세 인하·해고 요건 완화 등

기업 이익만 담아…농어민 소외

농업은 ‘생명’ 논리로 접근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 원칙·철학 잊지 말기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국이, 또 온 세상이 어수선한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다음으로 경제계에서 파워를 자랑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3월 하순 의미심장한 문건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40대 입법건의안이 그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건의안을 낸 것은 누가 당선되든 건의사항을 수용해달라는 이야기다. 그 내용과 논리를 좀더 살펴보자.

우선 경총은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2%에 그치고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도 비상국면에 놓였기에 경제 재도약과 기업의 투자활력 회복을 위해 경제·노동 관련 8대분야 40대 입법 개선과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기업활력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2%로 인하해달라는 것이다. 더불어 법인세 ‘최저’ 한도도 폐지하라고 했다. 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및 온라인쇼핑 영업시간 제한을 폐지(완화)하라는 내용도 있다.

나아가 경총은 기업 경영의 안정성과 영속성 확보를 위해 감사(위원) 선임 시 ‘3% 룰(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지분 중 3%만 의결권을 인정)’을 폐지해야 하며, 상속세 최고세율을 25%로 인하하고 상속세 공제요건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과 관련해선 탄력근로제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개선과 특별(인가)연장근로 허용사유 확대, 경영상 해고요건 완화 등의 입법과제도 들어 있다. 특히 사업장 내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쟁의행위 때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경영의 연속성 및 노동 통제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요컨대 경총은 ‘기업심리와 투자활력 회복’을 통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남은 20대 국회와 다가올 21대 국회 입법 논의과정에 40대 개선과제를 적극 반영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국회가 일을 제대로 해달라는 것, 나아가 경제활력을 드높이고 미래 희망을 만들자는 취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절실하고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내용 아래에 깃든 의도를 보면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 건의안에는 농민이나 서민의 살림살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경총의 간부는 물론 그 회원들(각 회사 사장과 임원들), 나아가 그 소속 노동자 전체가 먹고살기 위해선 밥상을 차릴 것인데, 바로 그 밥상을 위해 들판에서 일하는 농어민의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오로지 기업 입장에 서서 이익은 많이 내고 비용은 줄이려 한다.

둘째, 약 20년 전 아시아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이건 약 10여년 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이건 나아가 지금의 코로나19 위기이건 재벌이나 기업들은 위기를 절묘하게 ‘기회’로 둔갑시킨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구호 자체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기회인가? 이제 21대 국회의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민주주의를 더 심화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셋째,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어느 정당이 다수당이 되든 별로 바뀌지 않을 것도 있다. 일례로 과거엔 풍년이 들면 온 마을사람들이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벌였으나 이제는 풍년이 들면 오히려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생명’ 논리에 의해 움직여야 할 농사가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이제 바꿔야 한다. 사람의 논리, 공동체의 논리로 모든 걸 바꿔야 한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일부 시장의 논리도 필요하지만(재래시장과 중고가게 등), 민주 정책의 원리, 풀뿌리 공동체의 논리, 생태 조화의 논리를 구현하는 새 사회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공포 속에 떤다 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과 철학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경총 건의안에는 그런 철학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노동자·농민·서민의 삶이 망가져도 아무 관심이 없다. 300명 국회의원 중 절반이라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강수돌은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독일 브레멘대학교 경영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현 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교수 ▲저서 <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영화관에 간 경영학자> <중독의 시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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