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미텔슈탄트와 협동조합금융

입력 : 2019-12-06 00:00 수정 : 2019-12-07 00:03

독일의 중견 중소기업은 노사 협력·쉼 없는 혁신 통해 대기업과 임금격차 없어

협동조합은행과 관계금융으로 기업과 제조업 발전 이뤄

한국도 관계금융시스템 육성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독일의 미텔슈탄트와 협동조합금융에 관해 생각해본다.

‘히든챔피언’이라고도 불리는 미텔슈탄트는 독일의 중견 중소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경쟁사가 갖지 못한 원천기술을 보유할 뿐만 아니라 노사간 협력에 기초해 쉼 없이 혁신한다. 34만개에 이르는 미텔슈탄트는 독일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물론 독일에서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발생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세계적으로 판로를 확보하고 있으니 독일 내 대기업과의 협상에서 밀릴 일이 없고, 대기업에서 주는 만큼의 임금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없으니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일류대학을 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칠 필요가 없고, 사설학원을 찾아 특정 지역으로 이사가 몰리는 바람에 집값이 뛰지도 않고, 사교육에 돈을 쓰느라 노후 대비 저축이 어려워지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듯 중소기업이 강력해지는 것만으로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독일에서 미텔슈탄트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는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의 존재다. 관계금융은 지속적인 접촉과 관찰, 그리고 현장방문 등을 통해 확보한 정성적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금융거래를 말한다. 관계금융을 하는 은행의 심사역은 해당 기업의 담보나 재무제표, 신용등급 등 경성정보에만 기초해 대출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기업가의 성품이나 평판,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관계기업으로부터의 신뢰도 등도 참고한다. 신생기업이라 담보가 없어도 신용과 사업성, 그리고 기술력을 담보로 신용을 공급하는 것이다. 관계금융의 주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이체방크나 코메르츠방크와 같은 거대 민간시중은행이 아니다. 독일의 관계금융은 지역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은행과 공공은행이 주도한다. 거대 민간시중은행은 ‘거래금융(Transaction Banking)’을 한다. 담보 및 재무제표, 개인이나 기업의 신용등급을 참고해 대출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시중은행이 하는 금융방식이다.

독일의 경우 2018년 현재 은행 전체 자산 중 도이체방크 등 4대 대형 시중은행의 자산점유율은 24%에 불과하다. 한국의 민간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은행 등) 비중이 60%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은 관계금융을 하는 협동조합은행과 지방공공은행의 비중이 37%에 이르러 대형 시중은행의 자산규모를 앞지른다. 반면 한국의 경우 지방공공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은행인 기업은행이 전국망을 갖고 있지만 관계금융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전통제조업이 갈수록 취약해지는 이유는 관계금융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행은 관계금융이 가능한 금융기관이다. 지역 농·축협을 비롯한 상호금융기관은 지역밀착형이다. 저신용자에 대해 정성적 정보를 활용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시중은행보다 낮은 이자로 신용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금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래금융 일색인 한국의 금융시스템으로는 중소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지역 농·축협이 앞장서서 지역 내 농업 관련 산업과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관계금융을 펼친다면 한국경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관계금융의 육성을 위해 지역 농·축협 등 상호금융에 대한 정부의 지원체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범농협에 존재하는 두 갈래의 금융주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상호금융과 NH농협금융지주를 합친다고 가정하면 자산 80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기관의 등장이 가능하게 된다. NH농협은행의 지점과 지역 농·축협의 상호금융을 결합시켜 규모의 경제를 지닌 지역 내 대형 점포를 형성하고, 여기에 농협의 교육지원사업까지 가세하면 제대로 된 생산적인 관계금융을 펼칠 수 있다. 관계금융이 만능통장일 수는 없지만 거래금융 일색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개선하기 어렵다. 협동조합금융이 관계금융을 선도하고 한국형 미텔슈탄트를 육성하기를 상상해본다.
 



김용기는 …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영국 런던정경대(LSE) 경제학 석사, 국제정치경제학(금융) 박사 ▲현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 ▲현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저서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 다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