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남몰래 흐르는 눈물

입력 : 2022-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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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외국에 다녀온 동생이 비행기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가 매우 좋아서 자꾸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외국어라 가사 내용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율이 어찌나 애절하고 아름다운지 수십번 반복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오페라 아리아인 것 같은데 “아마도 언니는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곡을 흥얼거렸습니다. 열심히 심문(?)한 결과 동생의 마음을 흔든 범인을 찾아냈지요. 그 노래는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1797~1848년)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네모리노는 시골에 사는 순진한 농부인데 농장 지주의 딸 아디나를 짝사랑합니다. 이른바 금수저로 태어난 아디나는 늘 책을 가까이하는 예쁘고 똑똑한 처녀인데 무식하고 가난한 네모리노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겠죠. 어느 날 사랑도 구할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큰 결심을 합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라면 모든 병을 고친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장수를 잘 아실 겁니다. 저 역시 기억나는데요. 현란한 말솜씨와 손짓으로 군중의 혼을 쏙 빼놓은 아저씨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사실 약장수는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전에 입을 맞춘 바람잡이 몇명이 돈을 꺼내 흔들며 약을 달라고 아우성치면 동네 사람들도 조급한 마음에 우르르 달려들곤 했지요. 19세기 유럽에도 비슷한 형태의 약장수들이 있었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도 가짜 약장수 둘카마라가 아디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신통방통한 약을 지어준다며 네모리노를 속인 후 싸구려 포도주를 비싸게 팝니다. 약효는 며칠 뒤에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는 자신이 도망갈 시간을 벌려는 수작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네모리노가 약을 사서 마신 후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눈물을 흘립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아디나의 눈물을 보고 흥분한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가 ‘남몰래 흐르는 눈물’입니다. 이 곡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얻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부르는 기쁨의 노래이지요.

네모리노의 역할은 밝고 화려한 소리를 가진 테너가 맡습니다. 이 노래는 남성이 내기 어려운 음역에서 고음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완벽한 기교와 섬세한 감정 표현이 없다면 소화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설의 테너 파바로티는 어찌나 이 역할을 잘 소화해냈는지 1988년 베를린 도이치 오퍼(Deutsche Oper Berlin)에서 ‘사랑의 묘약’을 공연할 때 1시간 7분간 박수를 받았답니다. 이뿐인가요. 관객의 계속되는 요청에 167번이나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하며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비단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바순의 연주로 시작해 벅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테너의 고음으로 쏟아내는 매력적인 이 노래는 한번 들으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늘은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선곡해 추천합니다. 더운 날씨에 지치고 메마른 마음을 음악의 묘약으로 촉촉이 적셔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기연 (이기연 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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