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산양양조장, 개조가 아닌 재생

입력 : 2021-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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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로 개조한 산양양조장의 벽체 부분. 지금은 ‘산양정행소’라는 이름의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출처=‘스튜디오 히치’ 홈페이지

오래전 목화솜 이불을 손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불을 뜯고 홑청을 벗겨 푹 삶고 살짝 말렸다. 그런 다음 풀을 빳빳이 먹이고 다듬이질을 했다. 솜은 따로 솜틀집에서 수선하거나 햇빛에 널어 소독했다. 그런 다음 솜과 홑청을 다시 모아 한땀 한땀 바느질하면 죽었던 숨이 보송보송 살아나 훨씬 가볍고 따듯한 이불이 됐다.

그런 정성과 수고로움이 느껴지는 건물이 있다. 경북 문경의 ‘산양양조장’이 그렇다. 산양양조장은 원래 일제강점기인 1944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1998년 폐업의 운명을 맞이한 이곳은 2018년 경북도가 산업유산으로 지정한 후 문경시가 사들여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설계를 맡은 신진 건축가 박희찬은 목화솜 이불을 손질하듯 건물의 구조물을 거의 다 해체하고 재건축했다. 훼손 상태가 심한 목조 트러스(지붕을 받치는 삼각형의 구조물)도 해체절차를 밟았다. 그런 다음 공장에 보내 보수하고 현장에 다시 설치했다.

오래된 기둥은 썩은 밑동을 잘라내고 그 위에 새 목재를 이어 붙였다. 붕괴 위험이 있는 벽체는 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로 새롭게 만들고 문을 내 실내와 마당을 연결했다. 왕겨 단열재나 골재와 같이 해체 과정에서 나온 옛 재료도 참신하게 재활용했고 양조장의 역사를 담은 전시공간도 마련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옛 양조장은 세밀함이 살아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산양양조장은 2020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우수상과 함께 한국건축가협회상도 받았다. 그런데 그 성과보다 덜 알려졌지만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시작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문경시청·건축가·주민은 물론 이곳을 위탁해 운영할 귀촌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됐다. 건축주와 건축가 그리고 시공자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아름다운 협력을 다했다. 이것은 경제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다.

미담은 또 있다. 공모 과정을 거쳐 선발된 귀촌 청년들은 ‘산양정행소’라는 새 이름을 걸고 이곳을 카페로 운영하며 지역과 상생하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활약상은 <농민신문> 2021년 6월23일자 ‘애물단지 옛 양조장, 지역관광 명소 변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을 다시 살리는 것은 단순히 낡은 부분을 개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훼손된 부분을 살려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기능과 가치도 충족해야 한다. 그래야 건물의 수명도 오래가고 사람들의 삶도 풍요로워진다. 원래 발전소였던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폐정수장을 재활용한 서울 영등포구의 선유도공원처럼 말이다.

규모가 작고 농촌에 있지만 산양양조장은 이 두곳 못지않은 가치를 지녔다. 보존과 새로움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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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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