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웃어도 웃는 게 아닌 미소

입력 : 2021-09-15 00:00 수정 : 2021-09-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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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미소 짓는 꽃’, 2011년 ⓒMurakami Takashi.

얼마 전 웃지만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 ‘웃프다’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그림을 발견했다. 일본 출신 현대미술가로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59)의 <미소 짓는 꽃>이다. 아시아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다카시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 앞에서도 작품을 설치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미소 짓는 꽃>은 환하게 웃는 꽃 얼굴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색색의 꽃이 만발한 것만 해도 즐거운데, 웃는 얼굴까지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해진다. 그런데 여기 그려진 꽃에선 인공적인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 같다. 너무도 한결같은 표정으로 기계처럼 방긋방긋 웃는 탓인지 오래 들여다보면 현기증까지 난다.

다카시는 직접 차린 패션회사 대표로 있으면서 자신의 꽃 그림을 비롯해 여러 작품 이미지를 빌려 방석·베개·가방·티셔츠 등의 제품을 제작한다. 그 제품의 브랜드명은 <카이카이키키(怪怪奇奇·괴괴기기)>인데, 이름 그대로 괴상하고 기이한 형상으로 가득하다.

다카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푹 빠진 소년이었다. 만화를 너무 봐서 이 세상이 입체가 아니라 평평하게 보일 정도였던 그가 창안한 예술개념이 바로 ‘슈퍼플랫(Super Flat)’이다. 만화처럼 완전히 평면으로 된 인위적인 세상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미소 짓는 꽃>에서처럼 뜻과 목적을 알 수 없는 균질한 웃음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슈퍼플랫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버려야 할지 아니면 배후에 숨은 의미라도 찾아야 할지 망설여진다. 다카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혼란스러움이 아닐까.

각종 매체에서 다카시가 언급했던 것을 참고하면 그의 작품세계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작업하면서 틈틈이 일본인이 겪었던 원폭 투하의 외상이나 일본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지진·쓰나미 같은 재난을 떠올렸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져 조금 전까지 평화롭던 일상의 보금자리가 모조리 휩쓸려갔다고 상상해보라. 재난 후에 찾아드는 무력감은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리라는 최후의 희망마저도 싹트지 못할 만큼 절대적이다.

망연자실해 폐허가 된 마을에 서 있노라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아무리 믿으려 해도 현실 같지가 않아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게다. 그의 작업에 스며든 내막을 알고 <미소 짓는 꽃>을 보니 ‘웃픈’ 기분이 든다. 꽃이 조금의 여백도 없이 겹치듯 반복하면서 무한 확장하는 양태를 보니 숨이 턱 막히려 한다.

정말로 행복해서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행복해지고야 말겠다는 강박증 가득한 결심이 서린 사람처럼 보인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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