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절두산 순교 성지와 일상의 리노베이션

입력 : 2021-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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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 이후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내부. 사진출처=월간 SPACE(공간)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 옆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있었다. 봉우리 모양이 머리를 치든 누에를 닮아 ‘잠두봉’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잠두봉은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가 됐다. 그때부터 잠두봉은 ‘절두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00년이 흐른 1966년, 천주교는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기념관과 순례성당을 짓기로 했다. 신자들의 목을 베었던 절두산의 모양을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설계공모를 했는데, 건축가 이희태(1925∼1981년)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이희태는 기념관과 성당을 절두산의 가파른 바위절벽 위에 올렸다. 드문드문 농가가 있는 한적한 마을에서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는 순교의 역사적 현장에 종교적인 색채를 더하는 듯했다.

천주교가 서양에서 유래한 종교인데도 건축양식은 한국의 전통 가옥에 더 가까웠다. 순례성당은 벽돌로 된 묵직한 몸체 위에 얹은 둥근 지붕이 초가집이나 갓을 연상시킨다. 순교기념관은 외부로 돌출된 보와 열주가 한국 목조건축의 구성방식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1967년에 준공된 건물은 토착적인 한국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다시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순교기념관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전시 공간이 여러번 개조됐고 설비 공간도 계속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내부 모습은 점점 훼손돼갔다. 2018년 박물관 리노베이션(개보수) 작업을 맡게 된 김승회 건축가와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는 처음 박물관에 있던 풍부한 공간감을 회복하면서 부족한 전시 공간을 품격 있게 확보하고 싶어했다. 먼저 잡다하게 늘어난 전시용 칸막이와 계단을 철거하고, 항온항습·소방 시설로 가득 찬 천장을 들어냈다.

오랫동안 숨겨졌던 건축물의 골격과 천장 채광이 드러나자 공간이 한층 넓어지고 높아지고 환해졌다. 그렇게 비워낸 공간에 원래의 기둥과 보를 그대로 노출해 실내 공간을 개방감 있게 꾸몄다.

높아진 천장 아래 중간쯤 높이에는 아래층 전시 공간의 둘레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다리를 매달았다. 방문객이 천천히 이곳을 걸으며 전시물을 보고 묵상하는 실내 순례길을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천장을 통과해 쏟아지는 빛은 박해와 고난의 역사를 영광으로 승화시킬 듯 찬란하다.

어찌 보면 리노베이션은 전화위복과 맞닿아 있다. 훼손된 것을 되살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더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니까. 그런 의미가 건축에만 있을까. 다시 맞은 이 봄날에, 지난 1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 상처받은 마음과 포기했던 계획을 리노베이션해본다면?

절벽 위에 세워졌던 순교 공간이 감사와 영광의 장소로 거듭나듯 일상 속에서 리노베이션을 쌓다보면 언젠간 전화위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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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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