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마티스, 젊은이여 날개를 달아라

입력 : 202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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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재즈’에 실린 앙리 마티스 ‘이카루스(오른쪽)’, 1943∼1947년, 뉴욕 현대미술관.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 오늘부터 두분의 아이는 없어요. 오늘 밤 / 도망치는 게 아녜요, 날개를 편 것일 뿐 / 부디 알아주세요, 비상하는 거예요.”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년)에 나오는 프랑스어 노래 ‘비상’의 첫 소절이다.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며, 방과후엔 소를 돌보고 시장에서 치즈 파는 일을 돕는 소녀가 있다. 청각장애인 부부의 딸인데, 천상의 목소리로 비유할 만큼 노래에 소질이 있다. 하지만 부모의 귀엔 딸의 노랫소리도,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소녀는 파리에 있는 음악학교로 진학하고 싶지만 자신이 가족의 귀와 입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저히 떠날 수 없다. 꿈을 포기하려다가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게 된 음악학교 심사. 뒷자리에 앉은 부모를 배려해 수화를 쓰며 부르는 감동 어린 노래가 바로 ‘비상’이다.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려면 부모 품을 떠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커다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들,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 밖으로 보내며 걱정스러워 주의를 준다. “아들아,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날개가 젖어 가라앉을 것이고, 너무 높게 날면 태양열에 깃털의 밀랍이 녹아버릴 것이다.”

강렬한 색채를 야수처럼 썼던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년)의 후기 작품 중엔 <이카루스>가 있다. 마티스는 <재즈>라는 책 속에 이 작품을 판화로 인쇄해 넣기도 했는데, 그림 왼편에는 화가가 손으로 직접 쓴 글귀가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이 시대에, 공부를 마친 젊은이들을 비행기에 태워 먼 여행을 떠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는 청년에게 세계를 훨훨 날아다니며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보라고 격려한다.

미술의 한 기법인 ‘컷-아웃’은 가위로 하는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 위에 외곽선을 그리는 대신 종이를 오리는 것이다. 1941년 마티스는 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했고, 이후 거동이 불편해져 휠체어에 앉아 지내는 처지가 됐다. 가위질을 하는 것은 단순함을 추구하는 마티스의 작품세계에 알맞은 방식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화폭 앞에서 몇시간씩 붓을 들고 서 있을 수 없었기에 조수에게 색을 칠하게 하고 자신은 그것을 오려 작품을 완성했다.

화가는 혈기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카루스>를 제작한 듯하다. 노란빛이 듬성듬성 새어 나오는 파란 하늘 위로 날개를 펼치고 떠 있는 이카루스의 모습이 마냥 자유로워 보인다. 빨간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열정을 품은 이카루스의 심장인 모양이다. 우리는 이카루스를 무모하게 날아오른 어리석은 젊은이라고 기억하지만, 그의 해석은 다르다. 끝까지 도전해 멋지게 상공을 누빈, ‘비상’의 전설이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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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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